넓은 거실 두 면에는 검은색 커다란 소파가 묵직하게 침대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위에 민영이와 언니 민주가 소파 모양에 맞춰 편안하게 드러누워 각자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티비에서는 시끄러운 광고가 계속 나오고 있었다.  

“야. 광고 너무 길다. 딴 것 좀 틀어봐.”

“싫어. 조금 있으면 무한도전 재방한단 말야.”

핸드폰을 하던 민영이가 리모컨을 등 뒤로 숨기며 말했다.

“난 무한도전보다 1박 2일 보고 싶은데. 쳇.”

민주는 눈으로 리모컨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으나 몸을 움직이기 귀찮은 듯 그냥 드러누워 입을 삐쭉거리더니, 결국 자세 잡고 누워서 다시 핸드폰질을 하기 시작했다. 

민영이는 신경도 안 쓰고 핸드폰에 계속 시선고정을 하고 있었다. 카톡의 단체 방에 쉼 없이 올라오는 메시지도 읽고, 들을 음악 리스트도  업데이트하느라 나름 집중해야 했다. 그때 현욱에게 카톡이 왔다.

[ 나는 1-3시 수업 / 3-5시 도서관 및 휴식 / 5-6시 수업, 예쁜이는 내일 스케줄이 어떻게 돼? ]

[난 4시 - 6시 수업. 수업 하나 때문에 학교 가야 함 ㅠㅠ]

[에이 나 만날 건데 좋으면서 왜 그래.  ^^. 우리 내일 3시에 만나서 밥 먹자]

[봐서]


그새 무한도전이 시작했는지 민주가  낄낄거리고 있었다. 민영이는 웃음소리에 텔레비전을 보기 시작했다.


잠시 뒤. ‘카톡’ 하는 알림 음과 함께 핸드폰이 짧게 부르르 떨었다. 핸드폰 액정 화면에 미리보기로 현욱의 메시지가 보였다가 사라졌다.

[그러지 말고. 우리 내일 아침 일찍 만나자. 시험도 얼마 안 남았으니까. 아침 겸 점심도 같이 먹고. 공부도 하고 어때?]


하지만 민영은 카톡 메시지가 오는 것을 알았지만 확인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현욱의 메시지보다 박명수와 유재석이 더 웃겼다. 민영이는 낄낄 거리며 웃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핸드폰 화면에 최현욱 이란 글자를 본 민영은 민주를 슬쩍 보고는 방에서 전화를 받으려고 일어났다. 하지만 무한도전에 미련이 남아 바로 방에 가지 못하고 엉거주춤 선 채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핸드폰 소리 시끄러워! 받을 거면 받고. 끌라면 끄고.”

민주 언니가 한소리 했다. 그때서야 민영은 전화의 통화버튼을 누르며 방에 들어갔다.


“어! 바빴어? 안 받길래 끊을까 했었어.”

“아니. 텔레비전 봤는데.”

“아... 그렇구나..... 내일 일찍 보자고 톡 보냈는데 답이 없길래. 내일 우리 아침에 일찍 보자.”

“왜요?”

“같이 과제도 하고, 얼굴도 보고, 밥도 먹고 좋잖아. 이제 금방 시험인데 할 거 많지 않아?”


민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모처럼 늦잠 자는 날인데 일찍 나가는 게 귀찮았다. 그렇다고 귀찮다는 표현을 하기엔 미안했다. 

“예쁜아? 왜 대답이 없어? 귀찮아?”

“좀...... 밤에 이것저것 할 것도 많고...... 일찍 일어나는 게.....”

“그러지 말고 일찍 나와. 미드 보면서 밤새고 늦잠 자면 피부만 나빠져.”

민영은 뜨끔했다.

“10시에 만나자. 모닝 아이스크림 사줄게” 

“아이스크림?” 

“학교 앞에 생긴 아이스크림 집 가고 싶다면서, 내일 아침에 아이스크림 먹고, 공부하다가 늦은 점심 맛난 거 먹고, 내일은 나 알바 안 하니까 저녁에 치맥이나 삼겹살이나 너 먹고 싶은 거 먹자. 어때?”

 민영은 또 피식 웃었다. 기분이 좋았다. 오늘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고 한 말을 기억해 준 현욱이가 귀여웠다. 하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무뚝뚝하게 말했다.

“무슨 낚시해요? 미끼 뿌려서 나 잡아먹으려고? 흥!” 

“에이. 좋으면서. 그럼 내일 10시까지 아이스크림 집에서 보자. 응?”

그때 삐- 하는 소리와 함께 현욱이가  ‘1,500원입니다’라고 말했다. 민영은 현욱이가 일하고 있었던 것을 몰랐기에 순간 미안했다. 일에 방해가 되는 것 같아서 말이다. 그래서 얼른 말했다. 

“그럼 내일 봐요. 나 끊는다.”

“어어어어.”

손님이 또 왔는지 현욱은 건성으로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11:30 P.M] 


통화가 끝난 뒤, 화면에 나온 숫자다. 


현욱이는 조건부 4년 성적 장학생이었다. 일정 성적 이상을 유지해야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생활을 위해서 아르바이트도 해야 했다. 그런 현욱에게 민영이는 과외선생을 하라고 권했었다. 민영이는 주 2회 과외로 월 50만 원씩 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욱은 학생 모집도 어렵고, 과외를 받아 본 적이 없어서 선생질하는 게 싫다며 딱 잘라 말했었다. 그러면서 본인은 최저시급을 받아도 육체노동이 편하다며 웃었다. 

그런 현욱이가 민영이는 주관 있어 보이기도 하고, 미련해 보이기도 해서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아 혼란스러웠다. 

민영이는 생각하기를 그만두었다. 아무튼  밤늦게까지 일하는 사람, 오래 방해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었다.


 민영은 기지개를 켰다. 점심은 학생 식당에서 내가 사고, 저녁은 안 먹고 헤어지면 된다. 저녁은 지은이랑 약속을 잡으면 될 것이다. 민영은 다시 무한도전을 보러 거실로 나왔다.


민주가 민영이가 있었던 자리에 누워 티비를 보면서 웃고 있었다. 그새 텔레비전 채널은 1박 2일로 바뀌어 있었다. 민영이는 민주 발치에 반쯤 누웠다. 민주가 흘끗 민영이를 보더니  ‘연애하냐?’라고 말했다.

“연애는 무슨...”

“챗! 얼굴에 뭐 있다고 쓰여 있는데.”

“아..... 몰라. 말 시키지 마.”

“내일 비 올지도 모른다는데.”

“비?”

민영은 소파에 아예 드러누우면서 머릿속으로 입을 옷들을 생각했다. 반바지, 레인부츠, 긴팔의 롱 셔츠, 바람막이 잠바. 우산. 대강 코디가 그려졌다. 그런데 가방은 무엇을 들까?

“언니 빨간색 쇼퍼백 그거 빌려주라.”

“응? 나도 내일 그거 들고 갈 건데.”

“왜 그래. 평소에 잘 안 들고 다니면서.”

“나도 비올 땐 그 가방이 방수도 되고 젤 좋아.”

“휴~ 알았어.”

민영은 방으로 가서 장롱 문을 열었다. 물에 약한 캔버스 가방이나. 비싼 가죽 가방 말고, 쫌 막 써도 되는 적당한 싸구려 가방이 찾으니까 없었다. 그냥 내일 나가서 가방을 살까? 까지 생각하고 있다 보니 민영이는 짜증이 났다. 

‘왜 내가 이런 생각까지 해야 하는 거지? 아... 다 귀찮다. 내일 나가지 말까. 그런데 이제 와서 취소하려니 왠지 미안하고 번거롭고. 딱히 집에서 할 것도 없긴 하고.....’

그때 장롱 안쪽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에코백이 눈이 들어왔다. 그래 이 가방 안에 대강 넣고, 택시 타고 다니면 별일은 없을 것이다. 


민영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시 거실로 나와 소파에 누웠다. 그 사이 언니는 드라마를 틀어놓고 잠이 들어 있었다. 민영이는 언니가 깨지 않게 조심하며 언니 손에 있는 리모컨을 훔쳐 들었다. 그리고 채널을 바꿔 볼만한 프로그램을 찾기 시작했다.


다음날.

현욱과 민영은 아이스크림집 앞에 서 있었다. 가게가 문을 열려면 30분을 기다려야 했다. 현욱이 말했다.

“내가 아이스크림집 가게 문 여는 시간을 몰랐네... 흠... 우리 옆에 커피숍에서 기다릴까?”

“에이 30분 버티려고 커피에 돈을 쓰기엔 아깝지.”

“어차피 도서관 갈 때 커피 한 잔씩 들고 가니까. 미리 사두는 셈 치지 뭐. 들어가서 기다리자. 예쁜이가 너무 추워서  안 되겠어.”


현욱은 자연스러운 척하며 민영의 손을 탁 잡고는 커피숍으로 이끌었다. 순간 민영은 몸이 뻣뻣해지면서 멈칫했다. 어영부영 사귀는 사이가 된지 2주가 지났지만, 손을 잡은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현욱은 순간 긴장한 민영을 느끼고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더 꼭 손을 쥐며 걸었다. 


민영이의 손을 꼭 쥔 채 커피숍 카운터 앞에서 현욱이가 물었다.

“뭐 마실래?”

“난... 아무거나요.”

“그럼 아메리카노 주문한다.”

“네.”

“아메리카노 두 개요.”

주문을 마친 현욱이가 갑자기 왼팔을 등 뒤로 뻗으며 몸을 꼬기 시작했다.

“뭐해요?”

“응, 가방 안에 지갑 꺼내려고.”

“푸핫! 아니 배낭 가방 안에 있는 지갑을 어떻게  한 손으로 빼요? 이 손 놓고, 가방 벗고 지갑을 빼야지.”

“싫어, 손 놓기 싫어, 잠깐만 기다려봐. 지갑이 앞주머니에 있으니까 뺄 수 있어.” 

현욱은 민영의 손을 더 꼭 잡으며, 몸을 흔들거리며 왼팔을 허우적거렸다.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민영은 웃음이 터졌다.

“하하하. 손을 놔요.”

“싫어.”

"알았어. 내가 도와줄게요."

민영은 본인의 자유로운 손으로 지갑을 빼서 현욱에게 주었다. 둘은 잡은 손을 흔들며 얼굴을 마주 보고  킥킥거렸다.

“주문하실 건가요?”

한참을 기다려준 종업원이 한계가 온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종업원의 무표정한 얼굴과 단조로운 억양에 둘은 민망해서 웃음을 멈췄다. 현욱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흠흠. 아메리카노 두 잔이요.”

“5000원입니다”

직원이 손을 내밀었다. 현욱은 지갑을 열었지만  한 손으로 카드를 뽑을 수 없었다. 민영이는 현욱이와 눈짓을  주고받으며, 대신 카드를 뽑아 종업원에게 주었다. 직원이 계산을 하고 다시 카드를 돌려주었다. 이번에는 눈치껏 민영이가 재빨리 받아 지갑에 넣어주고, 현욱은 지갑을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직원이 커피를 만들러 가자 둘은 눈을 마주치고 푸하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오빠 이거 웃기다. 우리 무슨 외팔이 커플 같아"

“그치? 재밌다. 우리 내기할까? 먼저 손 놓는 사람이 점심 쏘기 어때?”

“좋아. 큭큭큭.”

둘은 키득 거리며 계속 웃었다.


커피를 받아 든 둘은 구석진 자리에 갔다. 민영은 어깨에 맨 가방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배낭을 멘 현욱은 가방을 내릴 수 없었다.

“오빠. 그만 손 놔요. 오빠가 졌네.”

“아니야. 아직 손 놓지 않을 거야. 가방 안 벗을 거야. 나 승부욕 있는 남자야.” 

현욱이 말하며 손을 더 꼭 잡았다. 민영은 피식 웃었다. 


잠시 뒤, 아이스크림에서도 현욱은 민영의 손을 놓지 않았다. 나이가 조금 있는 점원은 손을 놓지 않는 둘을 보며, 같이 웃어주었다. 그러면서  셀프서비스 임에도 불구하고 직접 테이블까지 아이스크림을 가져다주기까지 했다. 
민영이는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지긴 했지만, 개콘 같기도 하고, 로맨틱 코미디 같기도 한 지금의 상황이 웃기긴 또 많이 웃겨서 발간 얼굴로 계속 방실방실 웃고만 있었다.  

"어서 먹어.“

아이스크림이 테이블에 놓이자 현욱이 말했다. 오른손이 자유로운 민영은 한 스푼 떠서 현욱에게 내밀었다. 

“오빤 손쓰기 힘드니까. 내가 먹여줄게요.”

현욱은 받아먹으며 히히 웃었다. 민영도 한입 먹었다.

“맛있어?”

“응, 이렇게 먹으니까 더 맛있는 거 같아.”

민영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또 한 스푼 떠서 현욱에게 내밀었다. 현욱은 또 받아먹고 말했다.

“간접 키스네.”

민영은 얼굴이 빨개졌다.

“남들이 들으면 뭐라도 한 줄 알겠다. 그런 농담은 싫어요.”

“뭐 어때? 우리만 안 했으면 되지. 그리고 언젠가는  뽀뽀할 거잖아. 안 할 거야? 난 할 건데? 하하.”

민영은 갑자기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아이스크림을 또 한입 먹었다. 현욱이 잡은 손을 흔들더니 한입 더 달라고 졸랐다. 민영은 테이블 위에 놓은 새 스푼으로 아이스크림을 떠 줬다. 현욱이 아이처럼 입을 삐쭉이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민영이 먹던 스푼을 쳐다보며 ‘아. 아’ 하며 입을 벌렸다. 

민영은 그런 현욱이를 보며 ‘흥!’ 코웃음을 치더니, 들고 있던 스푼을 자기 입에 가져가 아이스크림을 입에 넣었다 뱉었다. 그리고는 민영의 입에 들어갔다나와 반쯤 녹은 그 아이스크림을 현욱에게 내밀었다. 

현욱은 뜨악한 표정을 지으며 순간 멈칫했다. 그러나 해볼 테면 해보시지 하는 민영의 얼굴을 보더니 바로 ‘앙’ 하고는 한 입에 그 아이스크림을 쏙 먹었다. 

민영이가 ‘허! 참!’ 하더니 기가 막혀했다. 

둘은 또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깔깔. 하하 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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