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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들어본 필름 카메라는 꽤 무거웠다. 사각 프레임 안에 그녀가 있었다.
창수가 바싹 붙으며 선배꺼니까 조심하라고 잔소리를 했다.

그녀는 긴 머리카락 한쪽을 귀에 꽂고,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더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찍었다. 입술을 깨물며 카메라 액정 화면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찰칵!
그 미소와 함께, 나는 셔터를 눌렀다.

“아야!”
뒤통수가 번쩍 이더니 창수가 카메라를 뺐었다.
“야! 이 새끼가 미쳤나. 이거 회장 선배 필름 카메라야. 찍으면 어떡해? 그냥 보라고 했지 누가 찍

으랬냐? 이 새끼가 돌았나. 어휴. 오늘 나 뒤졌다. 아 놔 선배가 가방 열지 말라고 했는데. 진짜 짜증 나네.”
창수가 큰 소리로 호들갑을 떨며 카메라를 들고 발을 동동 굴렀다. 창수의 소란에 다들 우리 쪽을 돌아봤다. 나는 뒤통수를 어루만지며 슬쩍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얼른 고개를 숙여 다시 카메라를 살폈다.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쭉쭉쭉 쭉쭉쭉 술이 들어간다. 쭉쭉쭉~~”
나는 술잔을 들고 난감해했다. 연속으로 3번째 벌주를 마시려는 참이었다.

카톡!

핸드폰 액정 화면에 위쪽에 미리 보기로 [형! 점장님이 찾아요. 빨리...]라고 글자가 떴다.
앞자리에 그녀가 날 보고 있었다. 나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벌주를 마셨다.
우와~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그녀도 박수를 쳤다.

주민영. 1학년, 자유전공학부. 예쁘고 귀여웠다.

창수가 따라오면 밥 사준다고 해서 쫄래쫄래 방문한 동아리방에 주민영. 그녀가 있었다. 나는 아르바이트도 잊고 사진기도 만져보고, 동아리 회식까지 따라왔다.

단지 그녀가 예뻐서.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웃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그녀가 벌칙에 걸렸다. 누군가가 그녀에게 소주와 맥주를 섞어 주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그 잔을 뺏었다.
창수가 소리쳤다. “어! 뭐하는 거야? 흑기사야?”


나는 대답도 안 하고 술을 벌컥벌컥 마셨다. 사람들이 얼음처럼 굳어서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때 창수가 박수를 치며 웃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다른 사람들도 박수를 치며 ‘사겨라! 사겨라!“ 하며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나는 그냥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점차 두 볼이 빨개지더니, 무뚝뚝한 표정으로, 자기 잔에 소주를 한 잔 따르고, 원샷을 했다.

그녀의 원샷에 다들 또 얼음이 되어 눈치만 보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창수가 ‘자자. 게임 시작하자.’라고 나서서 분위기를 원래로 되돌려주었다.
어영부영 게임이 진행되었다. 누군가가 또 걸렸고, 웃음소리가 커졌다. 그녀가 가방을 들고 일어났다. 나도 따라 일어났다.


"저리 가세요.”
“내가 데려다 줄게.”
“휴~. 취했으면 집에 가세요.”
“넌 왜 나 오빠라고 안 불러?”
“오빠?”
“나 삼수했다고 말했잖아. 다른 애들은 바로 오빠라고 부르던데, 넌 왜 그렇게 안 불러?”
“내가 왜 그렇게 불러야 하죠? 난 오빠 없어요. 집에 가야 하니까 그만 가세요.”
“데려다 줄게.”
“아~ 정말 왜 그래요?”

“예쁘니까. 너 정말 예뻐. 너 땜에 오늘 알바도 안 가고 지금까지 있었어. 너를 많이 보고 싶어서.”

흥! 민영이 코웃음을 쳤다.
난 자신이 생겼다.

그녀가 손을 들어 택시를 잡았다. 민영이가 문을 닫기 전에 나는 얼른 따라 탔다. 민영이는 짜증 나는 표정으로 나를 흘끗 쳐다봤지만 다행히 내리라고는 하지 않았다. 택시에 타자마자 그녀는 핸드폰을 봤다. 나도 따라서 핸드폰을 보니 카톡 메시지가 여러 개 있었다. 민영과 함께 그룹으로 묶인 사진동아리의 단체 채팅방이었다.

[둘이 눈맞았나?]
[설마.... 민영이가 좀 철벽녀라.. 민영이는 그냥 집에 가고. 현욱 오빠는 쪽팔려서 갔겠지.]
[현욱 오빠도 괜찮은데. 키도 크고 어깨도 넓고.]
[아까 진짜 박력 있었는데ㅋㅋㅋㅋㅋ]

[근데 진짜 촌스러웠지 ㅋ]
[삼수생이니까. ㅋㅋㅋ]
[앗. 근데 이거 현욱형도 보고 있는 거 아냐?]
[뭐 어때 우리가 욕하는 것도 아니고, 오빠, 보고 있어요? 파이팅!]
[민영아 응원할게]
...
...
  주민영 님이 채팅방을 나갔습니다 -

나는 민영이를 쳐다보았다. 민영이는 핸드폰을 손에 쥔 채, 고개를 돌리고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얼른 [나가기]를 클릭해서 단체 톡방에서 나왔다.


아파트 단지 입구에 택시가 섰다. 나는 얼른 카드를 내밀었다. 그녀는 뚱한 표정으로 내가 결제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민영이 말했다.
“이제 가세요.”
“응, 알았어. 그런데 전화번호 좀 알려줘”
“싫어요. 나 학교에서 연애 안 해요.”
“너 같이 예쁜 애는 당연히 부담스럽겠지. 하지만 나 괜찮은 놈이야. 몇 번 만나봐.”

“싫어요. 그리고 이제 동아리도 안 나갈 거니까. 부딪힐 일도 없을 거예요.”
“왜? 나 그 동아리 활동 안 할 거야. 오늘 잠깐 창수따라 갔다가 너가 예뻐서. 그래서 그냥 앉아 있었던 거야. 다시 갈 일 없어. 난 신경 쓰지 말고 하고 싶은 거 해.”
민영이는 코웃음을 치면서 대꾸도 안 하고 뒤돌아갔다. 나는 그녀 뒤를 따라갔다.
“왜 따라와요?!”
“너 너무 예뻐서 걱정되잖아. 엘리베이터 타는 거까지 보게 해주던지. 아니면 전화번호 줘. 집까지 잘 들어가는지 확인해야지 걱정되잖아.”
“됐거든요.”
“예쁜아. 그냥 전화번호 주고, 들어가면 문자 하나만 줘. 내가 정말 걱정돼서 그래. 너처럼 예쁜 애들은 잠깐이라도 조심해야 하잖아.”
“정말 오글거리게 왜 그래요. 예쁘단 말 밖에는 할 말 없어요?”
“다른 말? 아름답다? 눈부시다? 반짝거린다? 에이 예쁘다는 말을 다른 게 못 따라오는 걸, 지금 너는 너무 예뻐서 내 눈에 너 밖에 안 들어오는 거 알아? 너는 진짜 예뻐. 다 예뻐. 정말 너무 예뻐.”
“허! 참! 흥!”
그녀가 웃으면서 핏핏 거렸다. 난 그녀의 손에 있는 핸드폰을 확 낚아채서 내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다. 그녀는 또 짜증 나는 표정을 짓더니 팔짱을 끼고 나를 올려봤다.  그녀의 번호가 떴다. 나는 핸드폰을 돌려줬다.

“됐다. 나 여기 서 있을게. 집에 가서 잘 들어왔다고 문자만 하나 해줘. 그때까지 기다릴게.”
민영은 대꾸도 없이.  휙 몸을 돌리더니 걸어갔다.

잠시 뒤,
카톡!

[들어왔어요]
그녀가 메시지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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