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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이는 눈을 떴다. 핸드폰을 보니 6시 58분이었다. 민영이는 7시에 맞춰놓은 알람을 껐다. 기지개를 쭉 펴고 온 몸을 비틀어 침대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실로 나오니 아빠와 엄마는 식탁에 벌써 앉아 밥과 국을 드시고 계셨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래.”


“선식 갈아놨어. 밥 먹을래? 선식 먹을래?”


“그냥 선식 먹고 헬스장 갈 거예요. 러닝 머신 조금 뛰고 출근하려구요.”


“으흠!”


아빠가 심기기 불편한 헛기침을 하셨다. 민영이가 ‘지각 안 해요. 걱정 마세요.’라고 대답하며 웃었다. 민영이는 식탁 옆에 선 채 선식을 마셨다. 그때, 민영이 방에서 핸드폰 소리가 울렸다.

민영이가 컵을 식탁에 놓고 방으로 갔다. 현욱이었다.


“오빠, 아침 일찍 웬일이야?”


“응, 그냥 보고 싶어서. 출근 준비 다 했어?”


“아니 지금 하고 있는데.”


“그럼 서둘러서 준비하고 나와. 같이 아침 먹자.”


“아침?”


“응,  잠깐이라도 얼굴 보고 싶어서. 나 지금 니네 집 앞이야.”


현욱은 운전석 등받이를 최대한 뒤로 한 채, 눈을 감고 누워있었다. 그러다 민영이가 차에 타자 눈을 번쩍 떴다.


“우리 예쁜이 왔어?”


현욱이가 웃으며 민영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현욱의 피부가 거칠고 수염이 삐죽삐죽 나있었다.    


“오빠 무슨 일 있어? 한참 잘 시간에 여기까지 오고, 얼굴 꼴도 말이 아니고.”


현욱이 기어를 바꾸며 말했다.


“샌드위치 먹을까? 맥모닝 먹을까?”


“샌드위치. 근처에 파리바게트 카페 있어. 거기 가요.”


민영이가 아이스커피와 샌드위치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현욱이 덥석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더니 소주 원샷하든 한 입에 반 컵 이상을 쭉 빨아 마셨다.


“오빠, 정말 무슨 일이야? 어제 밤에 통화했을 때만 해도 아무 일 없었잖아. 간밤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꺼억!”


대답 대신 현욱이 트림을 크게 했다. 민영이가 창피해서 얼굴이 빨개졌다.    


“아휴,, 정말 왜 그래?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답 좀 해요.”


현욱이 민영이 얼굴을 가만히 몇 초간 쳐다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간밤에 학생 하나가 죽었어.”


민영이는 깜짝 놀라 손으로 입을 가렸다.


“우리 반 여자 아이인데. 날 많이 따르던 아이야. 결석 한 번 없던 애가 안 보여서 걱정했는데, 투신자살했데. 모의고사가 성적이 떨어졌다고. 서울대 의예과 갈 녀석이었는데...... 그래서 경찰서 다녀오는 길이야.”


현욱이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민영이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냥 가만히 현욱이를 바라볼 뿐이었다.

현욱은 커피 잔을 들어 흔들었다. 얼음이 사각사각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이 동네 재수반에 있다 보면 일 년에 한 두 번은 누군가가 죽었단 소리를 듣곤 해. 뉴스에 나오는 건 아주 일부분이니까. 생각보다 많아. 하지만 직접적으로 듣거나 본건 이번이 처음이야. 그것도 우리 반애라니. 예쁘고 착한 애였어. 성적이 떨어져 봤자 모의고사였고, 떨어져 봤자 서울대 낮은 과는 갈 수 있었어. 이해가 안가. 내가 뭘 잘못했나 싶고, 지금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드는 상황이야. 마지막으로 봤을 때도 잘 했다고 칭찬했었어.”


현욱은 빨대를 입에 넣고 커피를 마셨다. 바닥에 커피가 한 방울도 안 남을 때까지 몇 번이고 쪽쪽 빨았다. 빨대에서 컥컥 소리가 나자 커피 뚜껑을 열어 얼음을 입에 넣었다.


민영이는 당황스러웠다. 현욱이의 심정이 상상이 되지도 않았다. 민영이는 머뭇거리다가 결국 영화 속에서 본 대사 한 마디를 했다.


“오빠 잘못이 아니야.”


민영이의 말에 현욱이가 미소 비슷한 표정을 지으며 귀엽다는 듯 민영이의 볼을 쓰다듬었다.


“그래....... 고마워. 부담 갖지 마. 그냥 너 보고 싶어서 왔어. 어차피 너 출근시간이랑도 맞고 해서.”


“잘 왔어. 커피 한 잔 더 줄까?”


“아니야. 됐어. 집에 가서 밥 먹고 옷 갈아입고 출근해야지.”


“출근? 오늘 같은 날도 수업해?”


“그럼 해야지. 이런 날일수록 쉬지 말고 달려야지. 뒤숭숭할 시간 주면 애들 더 혼란스러워져서 안돼.”


“하지만.... 오빠 지금 그런 정신으로 어떻게 일해? 오빠도 충격받았잖아.”


“내가 어린애냐. 나한테는 너도 있고, 멀쩡한 다른 제자들도 있어. 내가 흔들리면 안 되지. 할 일은 해야지."


현욱이 컵을 흔들어 남은 얼음을 입에 털어 넣었다.


“일어나자 회사까지 데려다줄게.”


민영의 회사 근처에 현욱이가 차를 세웠다. 민영이가 뭐라고 인사해야 할지 머뭇거렸다. 그런 민영이의 마음을 아는 듯 현욱이가 민영이를 꽉 안았다. 민영이가 현욱의 등을 토닥였다.

민영이는 사무실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부팅시켰다. 윙~하는 소리와 함께 화면이 켜졌다. 네이버 메인 화면을 민영이는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쓸쓸한 표정으로 민영이의 볼을 쓰다듬던 현욱의 손길을 떠올리며 민영이는 자신의 볼을 쓰다듬었다.

저녁 6시 정각이 되자 민영이가 벌떡 일어났다. 민영이는 택시를 타고 현욱이가 일하는 학원으로 갔다. 학원 앞에서 민영이가 현욱에게 전화를 했다. 한참이 울려도 현욱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민영이는 근처 커피숍에 들어갔다. 몇 십분 후, 현욱이가 전화를 했다.


“전화했었네.”


“응, 그냥 궁금해서.”


“난 괜찮아. 수업하고 반 애들하고 하나씩 면담하느라 정신이 없네.”


“밥은 먹었어?”


“응, 반애들이랑 햄버거 먹었어. 지금 막 정리하는 중이야. 나 자율학습 감독하면서 남은 상담 해야 해. 바쁘다. 이따 밤에 퇴근할 때 전화할게.”


“응, 그래요.”


“그래 퇴근 잘해. 들어가.”


민영이는 현욱에게 학원 앞에 왔다는 말도 못 하고 전화를 끊었다.

10시가 되었을 때, 민영이는 또다시 현욱에게 전화를 했다.


“어. 안 그래도 전화하려던 참인데. 나 이제 퇴근하려고.”


“그래? 그럼 학원 앞 커피숍으로 와요. 나 거기 있어요.”


“뭐? 언제부터? 잠깐 기다려. 금방 갈게.”


현욱이 금방 민영이 앞에 나타났다.


“여긴 웬일이야? 언제 왔어?”


“그냥 걱정도 되고 궁금하기도 해서 사실 퇴근길에 바로 여기로 왔어. 죽치고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지.”


“저녁은?”


“여기서 빵 하나 먹었어. 배고파. 오빠도 배고프지 않아? 뭐 좀 먹으러 가자.”


“그래. 가자. 뭐 먹고 싶어?”


“뭐든 밥이면 돼. 오빠도 밥 안 먹었잖아.”


“그럼 부대찌개 먹자.”


현욱은 민영이를 데리고 근처 찌개 집으로 데려갔다. 현욱이가 부대찌개 2인분과 소주를 주문하자 민영이가 손을 흔들었다.


“나 때문이면 시키지 마요. 나 안 마셔.”


현욱이 좀 놀란 얼굴로 술을 취소했다. 찌개가 보글보글 끓자 현욱이 민영이에게 찌개를 덜어주었다. 그리고는 허겁지겁 밥을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민영이는 먹는 둥 마는 둥 이었다. 현욱은 정신없이 밥 한 공기를 다 먹고는 물을 쭉 비웠다. 그제야 민영이의 밥이 거의 그대로인 것을 보았다.


“너 왜 이렇게 안 먹어? 입맛이 없어?”


“응.”


“왜 그래? 죽은 건 내 제자인데 니가 왜 그래?”


“그러게 내 기분이 왜 이렇지? 오빠가 아무렇지 않은 것 같은 것도 신경 쓰이고, 그냥 누군가가 죽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생소하면서 충격이야. 나는 알지도 못한 애인데... 나 왜 이래?”


민영이는 숟가락을 상 위에 놓고, 물을 마셨다.


"민영아, 너 누군가가 죽은 거 처음 봤어? 아니.. 혹시 빈소에도 가본 적 없어?"


“응.”


민영이는 28살인 자신의 나이를 생각하며 왠지 부끄러웠다.


“그렇구나. 난 장례식장 몇 번 가봤어. 고등학생 때 할머니 돌아가셨었고, 지도 교수님 아버지 상도 있었고, 친구 조부모 상도 있었고.

처음엔 나도 너처럼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 빈소 다녀온 날이면 괜히 엄마, 아빠한테 전화도 하고 그랬어. 처음에는 다 그래. 그런데 몇 번 겪어보니까 무덤덤해지고, 아니 무덤덤해지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 같아.

물론 사실 오늘 제자 일은 워낙 충격이라 아무렇지 않기가 쉽지는 않아. 하지만 그래도 아무렇지 않도록 나 자신을 단도리 해야지. 왜냐면 아침에도 말했지만 난 지켜야 할 너와 내 남은 제자들이 있으니까.

비록 학원 강사지만 그래도 아이들을 기르는 일이야. 한순간도 허투루 대하면 안 돼. 아이들은 다 알아채거든. 선생님이 흔들리면 아이들은 다 무너지기 마련이야. 벌써 수능이 100일도 안 남았는데 지금 잠시도 방심하면 안 돼. 그러니까 난 일단 최대한 냉정하게 이 일을 대할 거야. 그러니까 너도 신경 쓰지 마.”


민영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역시 오빠는 다르다. 정말 어른인 것 같아.”


민영이는 현욱의 얼굴을 쓰다듬고, 까칠한 수염에 간질간질한 손등을 긁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꾹 참고 현욱이를 손을 잡으며 말했다.


“우리 다음 주에 여행 가자.”


“여행?”


“응, 다음 주 화요일에 오빠 쉬는 날이잖아. 월요일 밤에 갔다가 화요일 밤에 도착하는 걸로 우리 다녀오면 좋을 것 같아요. 오빠 머리도 식히고, 나도 간만에 어디 좀 가고 싶고.”






“도착하면 새벽 2시쯤 될 거야. 일단 아침에 늦게까지 푹 자고, 내일 바다 보고, 회도 먹고, 근처 산책하고 서울 오면 될 거야.”


민영이가 운전을 하며 말했다. 월요일 저녁 10시 넘어서 겨우 현욱이가 퇴근하고 난 후 둘이 강원도로 여행을 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현욱이는 건성으로 ‘응’ 하더니 계속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오빠.”


“응.”


“오빠. 내 말 듣고 있어?”


“응.”


현욱이가 계속 건성으로 대답하자 민영이가 좀 화가 났다.


“오빠 뭐해? 지금 우리 처음으로 여행 가는데. 핸드폰만 보고 뭐하는 거야?”


“아... 미안해. 사실 오늘 월급날이거든. 돈 들어온 거 정리해야 해서. 이게 바로 안 하면 좀 꼬이거든. 미안해. 한 30분만 시간을 주라.”


민영이는 입을 다물었다. 11시가 넘은 한 여름밤의 고속도로는 적막했다. 현욱이는 정말 30분 만에 핸드폰을 딱 껐다.


“이제 다 끝났어. 내일 저녁 여행 끝날 때까지는 일도 안 하고 너만 볼게.”


현욱이 웃으며 말했다. 민영이가 피식 웃었다.


“근데 뭘 한 거야? 월급 들어오면 정리한다는 게?”


“뭐 그냥 남들 하는 대로 하는 거지. 먼저 통장을 나눠서 돈을 입금해. 기본 생활비, 예비비, 적금, 고정 지출통장으로 나누지. 기본 생활비는 말 그대로 생활비고, 적금 붓고, 매달 공과금이랑 국민연금이랑 연금보험 같은 거 나갈 수 있게 맞는 금액 넣어두고 있지. 예비비는 비상 사태시 3개월 동안 생활할 수 있는 통장인데 CMA 통장에 묶어뒀거든. 그리고 오늘 목표 금액 완성했어. 그래서 기분이 매우 좋아.”


“그래? 축하해.”


“너한테는 부끄럽지만 내가 돈을 아직 아주 많이 버는 건 아니잖아. 게다가 이렇게 월급 받은 지도 얼마 안 되고, 그러다 보니 돈 모으기 시작한 지 얼마 안돼.

사실 한 동안은 정말 과외나 강사는 안 하려고 엄청 노력했었어. 당연히 취업해야 한다고 생각했었으니까. 그런데 취업이 쉽지도 않고 서류 넣고 싶은데도 없는 거야.

대신 너 때문에 시작한 과외 아르바이트는 안 하려고 해도 계속 일이 들어오더라. 생각해보니 4년 동안 과외로 생활비에 방값에 학원비에 너랑 데이트까지 했던 것이더라. 그때 내 적성이 강사인 것을 알았어. 그래서 그냥 계속 과외를 했어. 졸업할 땐 정말 돈이 쑥쑥 들어오더라. 엄마들이 비싼 선물도 많이 주고.

그런데 통장을 보면 생각보다 돈이 안 모이는 거야, 생활도 너무 들쑥 날쑥이고, 항상 언제 애들 그만둘지 몰라 불안하고, 또 10년 뒤, 20년 뒤의 그림도 안 그려지고. 그래서 작년에 학원에 취업했어. 결과적으로 수입이 확 줄어서 한동안 수습하느라 쉽지 않았지. 하지만 몇 달 전부터 플러스가 되더니, 지금 이렇게 돈도 쫌 모았네."


“근데 연봉이 꽤 되나 봐. 그러니까 그렇게 관리할 것도 생기지. 난 얼마 버는 것이 없어서 엄마한테 얼마 맡기는 거 빼고는 따로 관리하는 것도 없는데.”


“무슨 소리야. 너에 비하면 턱도 없지. 넌 전문직이잖아.”


“에이 회계사가 무슨. 전문직이긴 하지만 예전처럼 사짜 전문직은 아니지. 특히 나 같이 초짜 회계사는 그냥 일반 회사원 연봉이야.”


“거짓말. 회계사면 막 초봉이 1억 되고 그러는 거 아냐? 게다가 아버지 회사라면서 두둑이 챙겨주시고 그러겠지.”


“푸하하 우리가 의사냐? 의사도 그 정도는 아닐 걸. 뭐 주변에 의사가 없어서 모르겠지만. 경력 10년 가까이 돼야 연봉이 1억 될 거야. 난 이제 2년 차인데. 반토막 밖에 안돼.”


“연봉 5천? 그래도 대단하다. 여자가 2년 차에 연봉 5천이면 대박이지. 역시 시험에 붙은 보람이 있구나. 멋지다.”


“오빠도 그 정도 되지 않아? 재수반이잖아.”


민영이는 사실은 연봉 6천이라고 말해야 하나 순간 망설였지만 사실대로 말 안 하기로 결정했다. 아빠 회사이기 때문에 더 높은 연봉인 것을 굳이 말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현욱의 연봉으로 말을 돌렸다.


“오히려 과외할 때가 그 정도 벌었던 거 같아. 과외만 할 때는 입시철이면 한 달에 500 이상 벌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못 벌어. 연봉으로 치면 4000이 좀 안돼. 부끄럽다. 그래도 여기서 차값도 내고, 방값 내고, 이것저것 다 하고도 저금하고 노후저축 연금까지 하니까. 그리고 학원 경력 올라가면 인센티브 받고, 따로 과외도 시작하고 하면서 수입을 올릴 수 있으니까.”


“멋져. 사실 오빠 이제 30살인데 연봉 4천이면 괜챃은거잖아. 요즘 시대가 호락하지 않으니까.”


“아. 연봉 4천2만 원이야.”


“응? 200만 원이 나이고, 2만 원? 무슨 말이야?”


“크크크 무슨 말이냐면 주식으로 방금 2만 원 벌었거든. 그러니까 연봉 4천2만 원 ㅋㅋㅋ.”


“호호호 2만 원 벌었어? 오빠 주식 해?”


“애들하고 경제 수업을 한 적이 있었거든. 그때 주식을 했었어. 한창 빠졌을 때는 한 2천 만원 넣었었지. 근데 그렇게 되니까 본업이 뭔지 헷갈릴 만큼 일에 집중도 안되고 정신을 못 차리겠더라. 나한텐 그게 전재산이었으니까. 그래서 결국 다 똔똔에서 정리했어. 지금은 그냥 재미로 5백만 원 넣어두고 있어. 매달 이걸로 치킨 한 마리씩 사 먹어. 지금도 2만 원 돈 뽑았어. 우리 이걸로 내일 점심 사 먹자.”


“푸하하 3백에 2만 원이면 1%도 안 되는 거 아냐. 선생님이 실력이 너무 없는데. 그래도 점심 쏜다니까 칭찬해 줄게.

근데 오빠 많이 변했다. 예전에는 돈 이야기하는 거 싫어했는데."


“그땐 정말 돈이 없었고, 그냥 가오만 잡고 싶었으니까. 시간이 많이 흘렀지. 나도 이제 서른인데. 현실적이 되었다고 할까? 그리고 너도 내가 지금 어떻게 사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 건지 알아야지.”


“앞으로는 어떻게 살건대?”


민영이는 은근히 자신의 연봉을 솔직하게 말하지 않은 것을 찔려하며 말했다.


“앞으로는 학원을 차려야지, 메가스터디 원장처럼 큰 프랜차이즈 학원을 차리고 싶은 마음이 좀 있어. 일단 10년 안에 학생 수 300명 되는 중급 이상 학원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싶어. 그러려면 일단 내가 혼자 서울대 연고대에 애들 10명 이상은 보낸 경험이 있어야 할 것 같아. 지금까지 3명 보냈으니 앞으로 7명 남았지. 내 맘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그냥 그런 목표로 애들 가르치는 거야.

거기에다가 뭔가 획기적인 시스템도 있어야 하지. 학원의 개성이 있어야 하니까. 요즘엔 그걸 연구하고 있지.

그리고 마지막 목표는 내가 퇴근하면 마누라인 네가 지금처럼 이렇게 내 기사 노릇 해주는 거고 크크크."


현욱의 능구렁이 같은 마지막 말에 민영이는 괜히 얼굴이 빨개졌다.


“웃기시네. 그렇게 잘나면서 마누라 운전기사 시킬 생각하냐? 마누라는 기사 딸려 백화점에 쇼핑하러 보내야지.”


“에이 내 마누라는 그런 된장 아니거든.”


“그건 오빠가 모르는 거구.”


“어어. 너 된장이야?”


“허참. 누가 당신 마누라래? 누군지는 모르지만 오빠의 아내가 된장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거야.”


“아 몰라. 너만 된장 아니면 돼.”


현욱이는 조수석 등받이를 뒤로 젖히더니 기지개를 쭉 폈다.


“아.. 피곤하다. 우리 언제 도착해?”


“한 시간쯤 남았어. 피곤하면 눈 좀 붙여.”


“너도 피곤하잖아.”


“난 아까 일찍 퇴근해서 쉴 만큼 쉬었어. 오빠야 말로 주말에도 못 쉬고, 정신없었잖아. 일단 좀 자. 내가 알아서 깨워줄게.”


민영이는 혼자 여행 준비하느라 본인도 피곤했지만 티 내지 않고 웃으며 현욱이를 배려했다. 현욱은 고맙다고 말하고는 잠이 들었다.

민영이는 휴게소에 차를 멈췄다. 민영이는 아까부터 작게 울리던 현욱의 핸드폰 알람을 껐다. 현욱은 본인이 맞춰 든 알람도 듣지 못하고 팔짱을 꼭 끼고 잠에 빠져 있었다. 민영이는 뒷좌석의 담요를 현욱에게 덮어주고 화장실에 종종종 다녀왔다. 화장실에서 나오자 멀리 현욱이가 차 옆에서 스트레칭하는 모습이 보였다.    

민영이가 또 종종종 뛰어왔다.


“더 자지. 일어났어?”


“응, 그리고 이런 밤중에 휴게소가 얼마나 무서운데 혼자 가. 나 깨우고 같이 가지. 다음부터는 위험하게 그러지 마. 알았지? 그리고 이제는 내가 운전할 테니까. 이제 넌 좀 쉬어.”


“그래, 그럼.”


민영이가 조수석에 쏙 들어갔다.

현욱은 한 번 더 기지개를 하고는 운전석에 앉았다.


“근데 오빠 요즘에 스트레칭 엄청 하는 거 같아.”


“응, 담배 생각날 때마다 스트레칭하는 거야. 그러면 생각도 덜 나고 몸도 개운하고 좋더라구. 그리고 생각해보니까 내가 담배 끊은 지 지금 3개월 됐잖아. 3킬로 빠졌어. 괜찮은 거 같아.”


“그거 좋은데? 근데 난 오빠 만나고 2킬로 쪘는데. 억울하당.”


“넌 술 먹어서 그래. 그러니까 술을 줄여. 이번 여행에는 우리 술 먹지 말자. 어때?”


“뭐... 일단 생각 좀 해보고.”


“술은 포기를 못하는 구만. 귀여운 것.”


현욱이는 팔을 쭉 뻗어서 민영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민영이도 웃었다.

둘은 새벽 2시가 되어서야 예약해 둔 리조트에 도착했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현욱은 바지와 티를 훌훌 벗어던지고 팬티바람으로 침대에 쏙 들어갔다. 민영이는 그런 현욱을 보며 귀엽기도 하고, 좀 더럽게 느껴졌다.


“오빠 안 씻어요?”


“나 귀찮아. 일단 그냥 잘래. 너도 그냥 자. 피곤하잖아.


민영이는 코웃음을 치며, 차분히 옷을 벗고 개어놓고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화장실에 들어가 세수와 양치를 하고 나왔다. 현욱은 이미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민영이는 핸드폰 알람을 9시로 맞춰놓고 침대에 살며시 들어갔다.

민영이가 이불속으로 들어가자 깊이 잠을 자는 줄 알았던 현욱이가 덥석 민영이를 꼭 안았다.


“깜짝이야. 오빠 안 자?”


“우리 예쁜이 안고 자야지.”


현욱이가 잠에 취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민영이가 미소 지으며 현욱의 품에 쏙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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