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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드려 자던 민영이가 몸을 반쯤 일으켜 침대 옆의 커튼을 젖혔다. 손바닥 만한 창문으로 환한 햇살이 풍성하게 쏟아졌다. 햇살이 민영이의 벗은 목덜미와 등과 그리고 작고 앙증맞은 가슴을 반짝였다.


잠을 자던 현욱이가 손으로 해를 가리며 눈부셔했다. 민영이가 장난스레 현욱의 손을 잡아 더 눈부시게 만들었다. 그러자 현욱이 벌떡 일어나 거꾸로 민영이를 잡아 눕혔다. 두 팔을 현욱에게 잡혀 위로 올려진 민영이가 웃었다. 현욱이가 민영이를 내려 보았다. 민영이의 젖꼭지가 서 있었다. 현욱이가 민영이의 가슴 위로 쓰러졌다. 민영이가 낄낄 거리며 현욱의 머리카락을 흩트렸다.


“흐흐흐 간지러워.”


현욱이가 일어나서 민영이에게 키스를 했다. 민영이도 자연스럽게 안겼다. 갑자기 현욱이 입술을 떼고 민영이를 한참 쳐다봤다.


“왜?”


민영이가 현욱의 시선에 새삼 부끄러움을 타며 말했다.


“우리 몇 년만이지? 4년? 5년?”


“왜?”


“근데 꼭 어제 만났던 것 같아. 너의 몸이 다 기억나.”


“호호. 그래?”


현욱이 민영이의 어깨에 있는 점에 키스했다. 민영이가 낄낄거리며 몸을 꿈틀댔다.


“그래. 여기를 키스하면 넌 이렇게 웃었고.”


그리고 현욱이가 민영이의 옆구리에 손을 댔다. 민영이가 소리를 지르며 현욱이를 밀쳤다.


“여전히 옆구리는 건드리면 안 되는구나. 큭큭”


현욱이 웃었다. 민영이도 웃었다.


“나도 오빠 몸이 다 기억나.”


그러면서 민영이가 현욱이의 가슴에 키스했다. 현욱이 작게 신음소리를 냈다.


“가슴은 신음소리가 나고, 여기는...”


민영이가 현욱의 아래를 만지자 현욱이가 허리를 꿈틀거렸다.


“여기는 손만 대면 깨어나지.”


현욱이 웃음과 긴장과 기대감이 섞인 소리를 냈다. 민영이가 웃으며 입을 벌렸다.


잠시 뒤, 현욱은 이불도 덮지 않고 벌거벗은 채 침대에 누워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해가 저물고 노을이 깔리고 있었다.


화장실 문이 열리고 촉촉한 샴푸 냄새가 집안을 덮었다. 옷을 입는 소리가 들리고 민영이가 2층으로 올라왔다. 속옷 차림의 민영이는 마치 수영장에서 나온 듯, 건강하고 상쾌해 보였다.


민영이가 침대에 걸터앉더니, 힘이 빠져 허벅지에 기대고 있는 현욱의 작아진 고추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우리 나가자. 나가서 저녁 먹고 공원 좀 걷다가 나 집에 가면 될 것 같아.”


“자꾸 만지지 마 힘도 없는데 괴로워. 그리고 그냥 자고 가면 안돼?”


“왜? 난 요렇게 말랑말랑 할 때가 귀엽고 좋은데. 헤헤헤. 그리고 외박은 안돼.”


“알았어. 그럼 나 씻고 올게.”


현욱이 벌떡 일어났다. 현욱이가 씻고 나왔을 때, 민영이는 이미 옷을 다 입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지은이가 카톡으로 메시지 보냈어. 창수 오빠랑 넷이 만나자고 하네.”


“그래. 난 화요일 하고 일요일은 언제든지 되니까. 알아서 시간 잡아.”


“음... 돌아오는 화요일에 보자고 할까?”


“그래.”


현욱은 머리를 말리고, 옷을 입기 시작했다.


“그런데 창수 오빠한테 우리 이야기했어?”


“우리 이야기?”


“응.”


“우리 연락하고 지낸다고 말하긴 했어. 왜?”


“...... 아냐. 아무것도.”


민영이의 목소리가 왠지 삐딱했지만, 현욱이는 눈치채지 못했다. 현욱이가 옷을 다 입고, 핸드폰을 들며 말했다.


“나가자. 뭐 할까? 배고프면 뭐 먹고. 가고 싶은데 있으면 다 데려가 줄게.”






“맛있게 잘 먹었다.”


지은이가 마지막 소고기 한 점을 먹고,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우리 지은이가 잘 먹었다니 다행이다.”


창수가 웃으며 지은이 배에 손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지은이가 씩 웃었다.


민영이는 창수가 지은의 배에 손을 올려놓는 것을 보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언니도 그랬지만 임신했단 이유로 사람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남편이 아내의 배를 만지는 모습이 민영이는 괜히 야해 보이면서 불편했다.


“나도 오랜만에 잘 먹었어. 이렇게 만나는 게 얼마만이야. 옛날 생각도 나고 진짜 좋다. 자 그럼 우리 커피숍에 갈까? 이젠 아기도 있으니 술을 못 먹잖아.”


현욱이가 웃으면서 말했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자 현욱이가 계산서를 들었다. 창수가 펄떡 뛰면서 말했다.


“뭐야. 이 새끼! 내가 내야지. 내 결혼식에 온 거 감사하는 자린데 니가 왜 계산해.”


“오늘은 내가 낼게. 지은이 임신 축하 선물이야. 넌 커피를 사.”


현욱이 웃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창수가 진심으로 화를 내며 다시 한 번 계산서를 뺏으려고 했다. 그러자 현욱이 눈치로 민영이를 가리켰다. 현욱이는 새삼 자기 여자친구 앞에서 가오를 부리고 싶었던 것이다. 지은이가 순식간에 현욱의 마음을 눈치챘다. 그래서 일부러 엄살을 부리며 창수를 불렀다.


“에구구 오빠. 나 손 좀 잡아줘요. 나 몸이 무거워서.”


창수가 서둘러 지은이를 잡아 일으켜줬다. 현욱이는 계산서를 들고 카운터로 갔고, 다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근데 니들 언제부터 다시 사귀는 거야?”


커피숍에 앉아 각자 주문한 음료를 받아 들고 한 모금 마시자마자 창수가 돌직구를 날렸다. 창수의 물음에 민영은 얼음이 되었다. 그렇지만 현욱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지난주 일요일. 지금 8일째야.”


“그거 밖에 안됐어? 지난 두 달 동안 뭐 했냐? 맨날 둘이 붙어 있는 거 아니었어?”


“다시 사귀는 게 처음처럼 쉽지 않더라.”


“니들은 뭐가 그렇게 어렵냐? 난 또 결혼식 날 만나서 바로 사귄다고.”


“하하 그날 만났으니까 다시 이렇게 만날 수 있었어. 정말 고맙다 니들. 아니지, 뱃속 아가한테 고마워해야 하나? 하하하.”


현욱의 넉살에 창수, 지은이가 웃었다. 민영이는 애매하게 웃는 척을 할 뿐이었다.


“아무튼 축하한다. 그래 니들은 연분이야. 이렇게 다시 만나는 게 쉬운 줄 알아? 그러니까 이번엔 싸우지들 말고 잘 지내. 우리처럼 크크크.”


창수가 또 지은이의 배를 만지며 웃으면서 말했다. 이번엔 지은이가 알쏭달쏭한 얼굴로 웃는 척을 했다.


잠시 뒤, 지은이와 민영이가 화장실에 갔다.


“진짜 현욱 오빠랑 다시 사귀는 거야?”


“그게 모르겠어. 만나기는 하는데...... 난 사실 사귀는 건 아니거든. 일단 그냥 만나는 거지. 근데, 오빠는 사귄다고 생각하고 있나 봐.”


"그게 뭐야! 넌 오빠 안 좋아?"


“싫진 않아. 일요일마다 만나기는 했어. 거의 매일 전화나 문자도 주고받고. 그러니까 오빠는 다시 사귄다고 생각했나 봐. 난 아직 생각하는 단계고.”


“너 나쁜 년이구나. 매일 연락하고 주말에 만나면 사귀는 거 아냐?”


“아 몰라. 좋긴 좋아. 근데 사귀네 하면서 얽매이는 게 좀 걱정돼. 사람도 좋고, 지금도 좋고, 그런데 막상 어떤 약속이나 충성을 하기엔 두렵다고나 할까? 지금 이 정도가 딱 좋단 말이야. 그냥 편하고 자유로운 관계 말이야.

게다가 이미 한 번 실패도 했었는데. 그때처럼 또 헤어지는 것도 싫고. 난 오빠도 나와 같은 생각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오늘 보니 오빠가 진지한 것 같아서 지금 엄청 당황스럽다.

암튼 넌 어때? 결혼하니 좋아?”


“뭐...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고. 임신 때문인가 짜증도 많이 나. 솔직히 말하면 시부모님 때문에 정말 짜증 나는 일이 많아서 많이 우울해. 오빠랑도 엄청 싸우고.”


“그래? 근데 의외다 창수 오빠는 원래 싸우고 나면 여기저기 말도 막 하고 다니는 사람이잖아. 근데 하나도 안 싸운다고 말조심도 하네.”


“창수 오빠가 변하겠냐. 오빠는 싸움 안 한다고 생각해. 그냥 내가 임신 때문에 좀 예민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결혼하고서는 내가 많이 참고 있거든. 헤어질 것도 아니고, 애기 아빠니까 맞춰줘야지 생각하고 있는데...... 휴... 쉽지 않다.”


민영이는 어떤 위로를 해야 할지 몰라서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이제 나가자. 오빠들 기다린다.'라고 말했다.


여자들이 화장실 간 사이 창수는 핸드폰으로 현욱에게 태아 사진을 보여주었다.


"예쁘지?"


“야. 솔직히 신기하긴 한데 아직 예쁜 거는 모르겠다. 그냥 애기 형태일 뿐이잖냐.”


“눈이 삐었나. 여기 봐봐 코랑 눈이랑 손가락 발가락 이것만 봐도 사이즈가 나오는 구만. 완전 미스코리아 감 아니냐?”


“미친 새끼.”


창수가 바보같이 실실 웃으면서 또 다른 사진을 내밀었다.


얼마 간의 수다가 끝나고, 두 커플은 쌍쌍이 헤어졌다. 현욱이가 민영이네 집으로 차를 돌리자 민영이가 결심한 듯 말을 꺼냈다.


“오빠 우리 사귀는 거야?”


“그럼 사귀는 거지. 왜?”


“왜 그렇게 생각해? 사실 우리 그런 이야기 한 적 없잖아. 그리고 왜 8일째야? 기준이 뭐야? 섹스한 건 그저께인데.”


“그 전주 일요일에 뽀뽀했잖아.”


“뽀뽀하면 사귀는 거야?”


“당연하지. 그럼 넌 사귀지도 않는데 키스해?”


“그럼 섹스하면 뭔데?”


“사랑하는 거지.”


현욱의 입에서 ‘사랑’이란 단어가 나오자 순간 민영이는 인상을 썼다.


“사랑? 나한테 사랑한단 말도 안 했잖아.”


“그걸 말로 해야 아니? 그리고 우린 8년 전부터 사랑하는 사이잖아.”


현욱의 말에 민영이는 삐져야 하는지 화내야 하는지 고민스러워졌다. 8년 전에는 사랑했지만, 헤어지지 않았냐고. 헤어진 그 기간 동안에 너는 나에게 존재가 없었다고 솔직히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로 인해 현욱 오빠가 상처받을 것을 생각하면 입을 다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미 과거가 있는 둘 사이에서 섹스를 한 번 했다고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현욱이의 순수함이 새삼 크게 다가왔다. 그냥 민영이는 되는대로 말했다.


“난 머리가 나빠서 말로 해야 아는데. 사랑하는지 아닌지.”


“그래?”


현욱이가 씽긋 웃으며 음악을 틀었다. 달콤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가만히 있어봐. 우리 어디 좀 가자.’ 하더니 민영이의 집이 아닌 한강으로 차를 돌렸다. 한강이 보이는 곳에 차를 세워놓고 현욱이가 음악의 볼륨을 줄였다. 그리고 몸을 돌려 민영이 앞의 대시보드를 열었다.


반지 상자가 나왔다.


현욱이가 반지 케이스 뚜껑을 열어서 민영이에게 내밀었다. 작고 귀여운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민영아, 사랑해. 우리 진짜 제대로 사귀자. 내가 옛날에는 너무 어렸고 가진 것도 없어서 잘 못해줬잖아. 정말 많이 후회했어. 지금은 나, 다 해줄 수 있어. 너 아프게 안 할게. 널 사랑해. 행복하게 해줄게. 이제 내꺼 하자.

이거 원래는 100일에 주려고 했는데, 지금 받아주라.”


민영이는 갑자기 왈칵 눈물이 났다. 4년 전 그토록 받고 싶고, 끼고 싶던 반지였다. 그때는 뽑기로 뽑은 문방구의 500원짜리도 좋으니 반지라는 이름 붙은 거면 좋았었다. 그러나 결국 받지 못했었다.


그치만 지금은 아직 아니었다. 다시 만나 즐겁고 편하게 데이트하는 지금 이 상태가 좋을 뿐, 반지를 받고 앞으로 나가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억울했다.


현욱은 민영의 눈물에 당황했지만 자기가 민영이를 감동시킨 줄 알고 곧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에이구, 우리 예쁜이. 그렇게 감동스러워? 나 이제 웬만한 거 다 해줄 수 있어. 앞으로 더 좋은 거 아주 많이 해줄게. 이제 시작인데 지금부터 이렇게 울면 어떡해.”


“후~......”


민영이가 눈물을 닦고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현욱을 보았다.


“그런 거 아니야.

......

암튼 정말 고마워. 그리고 감동적이기도 하고. 하지만 받을 수 없어. 미안해.”


“뭐? 왜? 나 이제 이런 거 살 능력 있어.”


“그런게 아니야. 난 그냥 지금이 좋아. 그래서 사귀고 어쩌고 하면서 반지까지 끼면서 부담스럽게 책임질 거리만 늘리고 싶지 않아.

그냥 사귄다. 안 사귄다. 사랑한다. 어쩐다 규정짓지 말고 지금처럼 지내면 안 돼?

아무튼 지금 내 나이에 반지 끼는 게 부담스러워."


현욱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야. 나 거절당하는 거야? 나랑 사귀고 싶지 않다고???”


“오빠. 우리가 스무 살이 아니잖아. 그런 식으로 모 아니면 도 이렇게 자르지 말아. 오빠 마음 알겠어. 정말 고마워. 난 단지 지난 두 달처럼만 앞으로도 쭉 지냈으면 좋겠어. 그러려면 지금 반지 끼는 건 좀 아닌 거 같아. 일단 지금은 말이야.”


현욱은 이해가 가지 않아서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날 거절하는 건 아니라고?”


“응, 그냥 반지를 거절하는 거야.”


“안 예뻐서 그래? 그럼 팔찌나 목걸이로 바꿀까?”


“뭐... 그래도 되고.”


“그래 내가 보는 눈이 없어서 안 그래도 디자인에 자신이 없었어. 그럼 다음 주에 백화점에 같이 가자. 가서 니 맘에 드는 걸로 바꿔.”


“휴... 나중에 일단은 그냥 환불해. 아무튼 지금은 이런 보석을 받기가 좀 그래."


달콤한 노래가 분위기를 더 어색하게 만드는 것 같아서 민영이가 음악을 끄고 라디오를 틀었다. 밤 10시의 라디오는 10대 청취자들을 대상으로 웃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디제이의 웃긴 이야기에 현욱과 민영이가 동시에 깔깔 웃었다.


같은 대목에서 웃음이 터지자 민영이가 현욱의 손을 잡았다. 현욱도 미소를 지었다. 그때 민영이가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의 물건 보관함에서 라이터를 발견했다.


“오빠 담배 피워? 난 왜 오빠가 안 핀다고 생각했지?”


“끊었으니까. 옛날에 너한테 차이고 다시 폈기는 했는데. 그런데 또 끊었어.”


“언제?”


민영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현욱이를 바라보았다.


“너랑 다시 처음으로 데이트 한 날, 공원 간 날. 그날 널 바래다주고 깨달았거든 지난 시간 동안 난 한 번도 널 잊은 적이 없었고, 지금까지 계속 널 사랑한다는 것을 말이야.”


현욱이는 민영이의 눈빛을 느끼지 못한 채 '어제 저녁 고등어구이를 먹었다'라는 말을 하듯 사랑한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


민영이는 시동을 거는 현욱의 옆모습을 보았다. 가로수 불빛을 받아서 그런지 코가 오뚝하니 잘 빚은 미켈란젤로 조각상처럼 잘 생겨 보였다.


현욱은 반지 케이스를 뒷 자석에 던지고는 차에 시동을 걸었다.


“집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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