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욱의 코멘트를 보았다.


[일요일 결혼식이라 다행이다. 사회 맡겨줘서 고마워. 떨리는 걸]이라고 적혀있었다.






‘헉!’


자기도 모르게 놀라 소리를 뱉은 민영이는 입을 막았다. 현욱 오빠가 사회를 맡을 줄은 몰랐다. 결혼식장에서 만날 것은 알았지만 말이다.


‘나는 부케를 받고, 오빠는 사회를 보다니...... 이건 뭐지?’


민영이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민영이는 현욱의 이름을 클릭했다.


현욱의 페이스북에는 별 내용이 없었다. 몇 개 올라온 사진이나 멘트 그리고 댓글 달린 것들을 봐서는 학원 강사를 하고 있는 듯했다. 포스팅한 게 거의 없다 보니 바로 스크롤 몇 번 만에 마지막으로 봤던 기록을 볼 수 있었다.


[이번 여름 나는 살기 위해 애썼다. 가을이 왔다. 다행이다.]


민영이와 헤어진 그해 가을에 현욱이가 올렸던 글이었다. 그 이전의 기록은 모두 삭제되고 없었다.


민영이는 다시 지은이의 페이스북으로 갔다. 가장 마지막 결혼사진에 다시 한 번 축하한다고 결혼식이 기대된다고 자주 보자고 글을 달았다. 그리고 민영이 본인의 페이스북 계정으로 돌아갔다. 잠깐 고민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계정을 보면서 남자와 관련되어 찝찝한 것들을 다 지웠다.


거실이 시끌시끌했다. 언니가 왔나 보다. 민영이가 벌떡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그리고 민주에게 말했다.


“언니 왔어? 언니 내일 나랑 백화점 가자. 나 친구 부케 받게 됐어.”






결혼식은 엄청 북적였다. 하객들이 창수 오빠의 아버지와 악수하려고 줄을 서 있을고, 그 뒤에는 화환이 벽을 타고 주르륵 서 있었다. 그에 반해 화환도 사람도 별로 없어 한산한 신부 측 혼주석을 보니 새삼 창수 오빠가 부잣집 아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 민영이는 지은이 쪽에 축의금을 넣고,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신부 대기실로 갔다.


넓은 신부 대기실 안쪽 커다란 소파에 신부인 지은이가 앉아 있었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조명 아래 지은이는 부케를 들고 앉아 지인들과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하객들이 그런 지은이를 빙둘러싸며 보고 있었다.


민영이는 드레스를 입은 지은이가 예쁘긴 했지만, 부럽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모두 한 번에 보는 그 상황 자체가 낯가림 심한 민영이에게는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민영아! 이리 와.”


지은이가 민영이를 발견하고 큰 소리로 불렀다. 민영이는 쭈삣쭈빗 지은이에게로 갔다. 사진사가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진 찍겠습니다. 친구 분 살짝 무릎을 굽혀서 신부님 얼굴에 가까이 와주세요.”


민영이는 무릎을 굽히고, 이를 보이며 웃었다.


사진을 찍고, 민영이는 지은에게 화장실 다녀온다고 말하고 서둘러 대기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결혼식장을 벗어나 다른 층의 화장실에 갔다.


화장실 한 구석에 들어간 민영이는 볼일을 보고, 화장실 소파에 앉았다.


혼자 결혼식장에 온 것이 이렇게 뻘쭘할지 몰랐다. 부모님을 따라 친척 결혼식에 따라 간 적이나 있지, 민영이 본인의 친구 결혼식은 생각해보니 지금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어영부영 연락 끊겼던 친구들과 현욱 오빠도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어색한 만남을 생각하니 민영이는 부케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만 아니면 집에 가고 싶어 졌다.


한참을 그렇게 화장실에서 뭉개고 있던 민영이는 결혼식이 시작되는 시간에 맞춰 식장으로 갔다.


결혼식이 이미 시작되어 양가 어머님들이 초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민영이는 근처의 테이블에 빈자리가 있는 것을 보고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아 테이블을 슬쩍 훑어보니 모두 정장을 입은 아저씨들이었다. 서로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몇 명은 핸드폰을 보며, 지루해하는 표정을 보니,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고, 인사치레로 억지로 온 사람들인 것 같았다.


민영이는 속으로 안심하며, 아는 사람들 틈에 혼자 있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님들이 오늘 시작하는 부부의 앞날을 화촉 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신랑 신부 입장이 있겠습니다. 먼저 신랑 입장이 있겠습니다. 모두 박수로 맞이해 주시기 바랍니다. 신랑 입장!"


현욱의 목소리였다. 모두가 고개를 돌려 신랑을 바라볼 때, 민영이는 목을 쭉 빼고 앞을 봤다. 너무 멀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사회석에 현욱 오빠가 있었다. 현욱이 양복을 입은 모습은 처음이었다. 정돈된 헤어와 검은 슈트에 단정한 타이가 잘 어울렸다. 구두를 신어서 그런지 멀리서 봐도 키가 그때보다 더 자란 듯 커 보였다.


신랑이 입장하고, 모두가 일어서서 신부를 맞이하고, 그렇게 익숙한 결혼식이 흘러갔다.


긴 주례사와 축가가 끝나고, 신랑 신부가 퇴장했다. 신랑 신부가 식장을 빠져나가기도 전에 술과 음료와 애피타이저가 서빙되기 시작했다.


신랑 신부는 식장을 빠져나가는가 싶더니, 바로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단상 위는 뭔가 부산스러웠고, 하객들 앞에는 벌써 애피타이저와 한입 국수가 놓였다.


같은 테이블의 남자들은 애피타이저를 한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민영이는 먹는 시늉이라도 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음료수만 홀짝였다. 입맛도 없었지만, 언제 부케를 받으러 나가야 할지 몰라서 음식에 집중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사진 촬영이 시작되었다. 민영이는 테이블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갔다. 구석에 서서 잠시 기다렸다가 친구들 사진 찍는 순서에 앞으로 나갔다.


지은이가 활짝 웃으며 민영이를 불러 옆으로 오라고 챙겨줬다. 순간 창수 옆에 선 현욱과 눈이 마주쳤다. 민영이는 살짝 숙이며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사진 찍고 부케 받고, 또 사진 찍고, 며칠 동안 긴장했던 순간이 생각보다 순식간에 끝났다. 신랑과 신부는 2부 준비를 한다며 밖으로 갔다. 얼굴을 아는 친구들이 민영이에게 짧게 인사를 하며 반가운 척했다. 민영이도 대답을 하며 웃었지만 길게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는 없었다. 어느새 친구들은 삼삼오오 모여 다시 본인들의 자리로 갔다. 민영이는 부케를 손에 든 채, 잠시 오도카니 어색하게 서 있었다. 민영이는 세팅한 머리를 쓸어내리고 백을 팔에 다시 걸었다.


‘일단 화장실에 갔다가 집에 가자.’


민영이는 발을 뗐다.


그때 누가 뒤에서 민영이의 어깨를 톡 쳤다.


민영이가 뒤돌아보았다. 현욱이었다.


“민영아.”


“오빠.”


“오랜만이다.”


“어...... 어, 그러네.”


“밥 먹어야지.”


“어...... 아니. 난 이제 가려고.”


“집에? 벌써? 아직 식사도 안 끝났는데? 밥은 먹고 가야지. 2부 예식도 한데.”


“아... 그게.. 난 별로 배도 안 고프고, 또 갈 데도 있고....”


"밥도 안 먹고 갈려고?...... 그러지 말고, 그럼 나가서 나랑 같이 밥 먹자. 나도 배고파.”


“어? 아니...... 난......”


민영이가 뭐라고 대답할지 몰라서 입만 오물거리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오늘 현욱이를 만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눈인사 정도는 할 것이고, 어쩌면 인사도 할 수 있다고 생각은 했다. 그래서 인사하는 연습까지는 했었다. '난 잘 지내. 오빠도 좋아 보인다' 뭐 그런 대사들 말이다. 하지만 ‘밥 먹자’는 말에 대한 대답은 연습하지 못했다.


“부케까지 들고 혼자 가지 마. 그리고 진짜 나도 엄청 배고파. 지금 보니까 음식도 이미 다 나와서 먹기도 뭣한 것 같기도 하고, 또 혼자 밥 먹으러 가기 싫다고. 암튼 일단 밥 먹으러 가자.”


현욱이는 덥석 민영의 손을 잡았다.





다른 카테고리의 글 목록

끝이 없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포스트를 톺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