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시간이 되었다. 하루 종일 정신을 놓고 있던 나는, 결국 오늘 해야 할 일을 하나도 하지 않고 있었다. 사람들이 하나 둘씩 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나는 그제야 일을 시작했다. 7시가 되자 대부분이 퇴근을 했다. 그때 아빠가 나를 불렀다.


“너 어제 실수한 거 알아?”


“잘 몰라요.”


“지난번 니가 한 일 오류가 나서 어제 이회계사랑 김차장이랑 10시까지 일하고 갔어. 너 요즘 자꾸 실수해서 말이 얼마나 나오는지 알아?”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자격증만 있다고 다 회계사인 줄 알아? 일을 잘해야 회계사지. 이런 식으로 할 거면 경리나 해.”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눈물이 뚝 떨어졌다. 아빠는 내 눈물에 할 말을 삼키는 듯, 혀를 쯧쯧 차더니 나가라고 했다.


나는 아빠 방에서 나와 가방을 쌌다. 차를 타고 회사 건물을 빠져나와 집에 주차를 했다. 그렇지만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결국 나는 얼마 전부터 자주 가던 동네 작은 호프집에 들어갔다. 평일 조금 이른 저녁의 허름한 골목 호프집에는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맥주와 마른안주를 시키고 멍청하게 텔레비전을 봤다. 방영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마음에 안 들었다.


“아주머니, 다른 거 보면 안 돼요?”


아주머니는 아예 리모컨을 나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편하게 봐요.”


“고맙습니다.”


채널을 돌려, 예전에 한 번 봤던 런닝맨 재방송을 하는 채널을 찾을 수 있었다. 시원한 맥주를 마셨다. 온몸이 뜨듯해졌다.


피식피식 웃다가 광고 시간이 되었다. 그 몇 분 동안 눈 둘 곳이 없어 하릴없이 핸드폰을 잡았다. 김부장님이 카톡을 보냈었다.


[민영회계사님 괜찮아요? 그냥 좀 걱정돼서. 누구나 한 번쯤 그럴 때가 있는 거예요. 너무 힘들면 말해요. 언제든지 술친구도 해주고, 이야기 들어줄게.]


[괜찮아요. 부장님 말씀대로 그냥 그런 시기인 가봐요. 사춘기처럼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괜찮아요. 나중에 정리되면 그때 술 한잔 해요.]


[그래요. 민영회계사님은 멋진 커리어 우먼이잖아. 파이팅!]


나는 웃는 얼굴 이모티콘을 보내고 카톡을 닫았다. 런닝맨이 다시 시작했다. 그런데 이젠 또 보기 싫어졌다. 그래서 채널을 바꿨다. 바꾸고 바꾸고 전체 채널을 3바퀴째 돌릴 때쯤 주인아주머니가 말했다.


“아가씨, 볼만 한 거 없으면 MBC 보면 안 될까? 지금 드라마할 시간이거든.”


“네, 그럴게요.”


나는 얼른 11번을 틀고 다시 맥주를 마셨다.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울고 불며 꼭 껴안고 있었다. 어린것들이 뽀뽀도 했다.


“너 없이는 죽을 것 같아.”


‘흥! 죽기는 그래도 다 밥 먹고 똥 싸고 살 거면서.’


“사랑해.”


‘흥! 넌 또 다른 남자한테 흔들릴 거잖아.’


나는 속으로 드라마 대사 하나하나를 비웃었다. 결국 나는, 다시 핸드폰으로 시선을 옮겼다.


인터넷을 열고, 요즘 종종 들어가는 네이트 판에 들어갔다. 소설 같은 이야기들이 말도 안되고, 믿기지도 않았지만, 정말 웃겼다. 하나씩 읽다가 뭔가 나도 참여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댓글을 달았다. 누가 잘했다. 누가 못했다. 나라면 이럴 거다. 술을 마시고 오징어를 씹으며 댓글을 달다 보니 시간이 금세 많이 지났다.


맥주 500잔을 반도 먹지 않고 그냥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밖은 아직 추웠고, 나는 술이 약간 취했다. 집에 가려고 했지만 막상 나오니 아직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좀 걸을까 했지만 살짝 추웠다. 나는 그냥 주차장의 차에 들어갔다.


차에 시동을 켜고 히터를 틀었다. 핸드폰을 충전시키면서 다시 네이트 판에 들어갔다. 한참을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집에서 전화가 왔다. 언니였다.


“너 왜 집에 안와? 엄마가 전화하래. 지금 10시야.”


“일 좀 하고 천천히 들어가려고.”


“아빠한테 혼났어? 아빠가 전화로 엄마한테 뭐라고 하시던데.”


“아빠 집에 오셨어?”


“아니 오늘도 미팅하고 약속 있어서 늦으신대.”


“응, 좀 이따 올라갈게.”


“이모, 쪼꼬아슈큼 사주세요.”


“들었냐? 초코 아이스크림이랜다.”


“몰라, 됐어.”


나는 전화를 끊었다. 나는 달던 댓글을 마저 달고 핸드폰을 끄고 밖으로 나왔다. 근처 슈퍼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집으로 갔다.


예린이에게 뽀뽀를 받고 아이스크림을 줬다. 엄마가 대충 내 인사를 받고는 예린이를 데리고 부엌으로 갔다. 내 방에 들어갔다. 깨끗하게 방 청소가 되어 있었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거실 소파에 앉았다.


언니가 전화기를 붙잡고 낄낄대다 끊었다.


“형부야?”


“응.”


“싸웠다며?”


“그랬지. 근데 화해했어.”


“맨날 그게 뭐야? 허구한 날 싸우고 화해하고. 어휴 진짜 한심해서 원.”


“다들 그래. 사랑하니까 싸우고 화해하는 거지. 관심 없으면 싸움도 안 해.”


“언니, 진짜 형부 사랑해?”


“응, 사랑해.”


“왜?”


“말했잖아. 잘 생겼다니까.”


“형부 키도 작고, 대머리잖아.”


“근데? 내 눈엔 숀 코넬리처럼 보이는데. 섹시하고.”


“진짜 제정신이야?”


“아 진짜 왜 그래? 내가 잘생겼다는데, 너 형부 무시하냐? 쪼끄만 게 못하는 소리가 없어.”


언니가 소리를 꽥 질렀다.


“아니... 난 그냥... 미안해.”


민영이가 쫄아서 어깨를 움츠렸다.


“니네 왜 그래?”


부엌에 있던 엄마가 놀라서 달려왔다.


“아, 민영이가 자꾸 내 남편 못생겼다고 하잖아.”


“너 왜 그래? 저게 서른도 안돼서 노처녀 히스테린가. 쟤가 진짜 할 말 못 할 말 구분도 못하고. 어디 형부한테 못하는 소리가 없어. 입조심해.”


“아니... 난... 그냥...... 에이.”


나는 괜히 승질을 내며 방으로 숨었다. 드러누워 있다가 책이라도 읽을까 싶어 책장으로 갔다. 그런데 엄마가 다 정리해두어서 내가 원하는 책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엄마 손길로 가득 찬 방이 답답하고 내 방 같지 않게 느껴졌다.


한숨이 푹 나왔다.


요즘 내가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빈정대고, 비꼬고, 일도 잘 못하고, 왜 그럴까...... 내가 원래 이러지는 않았었는데.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할 일이 없었다. 뭐라도 새로운 도전을 해볼까 싶어 다시 취미를 검색해보기도 하고, 네이버 카페 같은 데도 뒤져봤지만 어제와 마찬가지로 아무 곳에도 흥미를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네이트 판에 또 들어갔다. 하지만 이젠 지겨웠다.


나는 이것저것 되는대로 클릭을 하다가 오랫동안 쓰지 않던 메일함이 생각나서 들어갔다.


다음의 웨공 카페에서 단체 메일이 와 있었다. 그 카페에 가입한 것이 이제야 기억이 났다. 나는 카페 가입을 탈퇴하려고 메일을 클릭했다.


웨딩 카페 화면이 모니터에 떴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몇 개의 글을 클릭했다.


여전히 비슷비슷한 일들이 수없이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시댁 욕. 돈 없다 징징대는 이야기, 특히 러브스토리 게시판은 더 했다. 줄줄이 나오는 이야기들이 다 너무 비슷했다. 비슷비슷한 만남, 남자의 고백, 집안의 반대, 경제적 어려움, 갑작스러운 임신, 아니면 부모님의 흔쾌한 승낙. 그게 그거인 이야기들이었다.


그런데, 참 재미없는 이야기였지만 사진에는 눈을 뗄 수 없었다. 못생긴 사람들, 뚱뚱한 사람들, 척 보기에도 가난한 사람. 늙은 사람들, 모두 예뻐 보였다. 아름답게 웃고 있었다. 나보다 더 부자이고 미인인 것 같았다.


나는 이제 서른을 눈앞에 두고, 벌써 노처녀 히스테리를 부리는 못난이가 되고 있는데, 이들은 아름다워지고 있었다.


사랑을 하니까.


부러웠다. 너무나 부러웠다. 사람들은 누구나 사랑을 하고 그것으로 하루를 살고 있었다. 나도 사랑을 하고 싶었다. 사랑을 해서 내 길을 찾고 어른 대접받으면서, 한 사람으로 당당하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붙잡고 사랑하자고 말할 수도 없었고, 비참하게 여기저기 소개팅을 부탁하면서 갈구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바보같이 사랑을 할 때까지 이따위로 살고 싶지도 않았다.


서른이 다 돼가는, 사랑을 못 찾은 여자는 어떻게 해야 저런 웃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일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나도 열정을 갖고 싶었다. 이렇게 비꼬고, 의심하고 부정적인 말만 하는 사람이고 싶지 않았다. 그저 되는대로 하루하루 살고 싶지 않았다. 이젠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


나는 식구들에게 말도 안 하고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주차장으로 가서 차에 시동을 걸었다. 일단 동해로 가기로 하고 차를 몰아 고속도로를 향했다. 고속도로에 진입하기 직전이었다. 전화가 왔다.


“어디야?”


언니였다. 나는 블루투스로 대답했다.


“그냥 나왔어. 머리 좀 식히려고.”


“이 시간에 어딜 갈려고. 엄마 걱정하시잖아. 빨리 와.”


“바다 보러 갈 거야. 주무시라고 해. 내일 올라올 거야.”


“이게 미쳤나. 오 밤중에 어딜 간다는 거야? 빨리 집에 들어오지 못해?”


“아 진짜. 나 이제 금방 서른이야. 직업도 있고, 자격증도 있고, 내 차도 있고. 내 맘대로 돌아다니다가 가고 싶을 때 집에 가면 안 돼? 언니가 뭔데 그래? 갔다가 금방 올라올 거야.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자.”


“뭐라고? 쪼끄만 게 웃기고 있어 아주. 너 그 가난뱅이 자식이랑 헤어졌다고 지금 이런 쑈까지 하는 거야? 왜 아주 가서 머리도 박박 밀지 그러냐. 그것까진 못하겠냐? 스무 살에나 이별 공식 어쩌고 하는 거지 서른 다 바라보는 나이에 갑자기 안 하던 짓하고 아주 진상 짓은 다하는구나.

뭐? 신경 쓰지 말라고? 엄마가 해준 세끼 밥 먹으면서 그게 어디서 할 말이야? 말도 없이 오밤중에 사라져서는 야! 니가 엄마 마음을 알아? 니 말대로 다 컸으면 부모 마음을 헤아려야지. 빨리 들어와!”


“아 씨! 서른 아니고 스물아홉이라고, 그리고 남자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니라고! 그냥 바다 보고 싶어 가는 거라고! 나 애 아니라고, 그리고 나 노처녀도 아니라고!!! 진짜 짜증 나게 그러지 좀 마.”


“니가 지금 사춘기처럼 굴잖아! 암튼 빨리 들어와.”


“안 들어가. 내 맘대로 하고 싶은대로 하고 갈 거야. 끊어!”


나는 전화를 끊었다. 금방 엄마 전화가 왔지만 전원을 꺼버렸다.


차도 있고 돈도 있는데 내 맘대로 덜컥 어디 가는 것도 허락받아야 하는 게 이해가 안 가고 너무 싫고 답답했다.

깜깜한 고속도로에는 이상하게 차도 하나 없이 조용하고 깜깜했다. 고속도로의 귀신 이야기 같은 것도 생각나기 시작했다.


라디오를 켰다. 시끄러운 댄스 음악이 나왔다.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히터를 켰다. 그래도 사람 온기만큼 따뜻해지지는 않았다.


금방 휴게소가 나왔다. 사람들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 신이 났다. 나는 기름도 넣고, 우동도 먹고, 할 요량으로 휴게소로 빠졌다.


하지만 밤중의 휴게소는 무서웠다. 바깥의 감자나 떡볶이를 파는 주전부리 매장은 다 문이 닫혀있었고, 실내에 우동과 라면 정도만 팔고 있었는데 아저씨 두어 명만 있어 휑했다. 화장실에 갔더니 엄청 넓은 화장실이 텅 비어있고, 반은 불이 꺼져있어서 음산했다.


나는 서둘러 볼일을 보고, 편의점에서 캔커피만 하나 사들고 차에 왔다. 차에 시동을 걸고, 내비게이션으로 목적지 설정을 다시 했다. 도착 시간은 새벽 3시였다. 한숨이 나왔다. 새벽 3시 낯선 곳에 가봤자. 어둠의 바다는 하늘과 구분도 되지 않을 검은색일 것이다.


새벽에 어둠을 보려고 굳이 내가 저기를 가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 봤자, 늘 봤던 그 바다고, 이 추위에 혼자 물에 뛰어들 것도 아니고, 회를 먹을 것도 아니고, 운전 때문에 술도 못 먹는데 내가 거길 왜 갈려고 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자 나 자신이 한심했다. 그리고 결국 그 바다란 곳도 현욱 오빠랑 갔던 곳이었다.

언니 말대로 정말 나는 드라마에 나오는 상투적인 이별 공식을 쓰고 있었다. 짜증이 났다. 여행이고 뭐고 집에 들어가 따뜻한 침대에 누워 자고 싶었다. 그렇지만 떵떵거린 것이 쪽팔려서 그대로 다시 집에 들어가는 것도 싫었다. 왠지 내가 지는 것 같았다.


차 안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이젠 휴게소 괴담이 생각났다. 밤에 만만해 보이는 차 문을 열고 칼로 위협하거나 납치하거나, 쓰레기를 강매한다는 이야기였다. 생각해보니 나는 외제차를 탄, 일행도 없는 여자였다. 나는 바로 차 문을 잠갔다.


갑자기 눈물이 났다. 컴컴하고 무서운 고속도로 위에서 어디로 갈지 길도 몰랐다. 그리고 아무도 나를 이해하고 달려와 주지 않을 것이다.


울다 보니 현욱 오빠라면 지금 당장 여기로 달려와 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라면 날 이해할 텐데. 아니 이해 못해도 그냥 와줄 텐데. 오빠라면 일단 그냥 날 안아주었을 텐데. 나는 현욱 오빠한테 전화하기 위해 핸드폰을 들었다.


그런데 핸드폰 메인 화면에 [행복]이란 글자를 보았다.


‘행복을 계산하라’


나는 정신이 들었다. 핸드폰을 껐다.


나는 지금 방황하고 있었다. 그건 현욱 오빠와 헤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나의 애인이었고 나의 아름다웠던 20대의 모든 추억을 공유한 나의 절친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힘들 수밖에 없다.


내 농담을 이해하고, 내 뒹굴거리는 모습을 사랑하고, 내 섹시함에 반응하고, 나와 같이 먹는 것을 편안해 하는, 혼자서 벌거벗고 다니면 어색하지만 둘이 같이 벌거벗고 있으면 편안해지는 우리였다. 그는 진심으로 있는 그대로의 날 사랑해주는 사람이었다. 나도 그를 사랑했다.


그래 다시 그와 만나고 싶었다. 퇴근길에 전화하고 싶고, 주말에 만나서 영화도 보고, 빈 집에서 노닥거리고 싶고, 여행도 가고 싶고, 섹스도 하고 싶었다. 그의 손이 그리웠다.


하지만 하면 안 된다.


왜냐면 더 이상 10년 후, 둘이 같이 있는 모습이 그려지지 않으니까. 그와 함께 미래를 만들고 싶지 않으니까. 나는 솔직히 연락을 하고 싶지만. 하고 싶지 않았다. 다시 그를 만나 연인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친구라면 모를까. 하지만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제 깨달았다. 내 미래는 나 혼자 만들어 가야 했다. 언제 올지 모르는 사랑을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다. 영영 안 올지도 모르고 10년 뒤가 될지도 몰랐다. 언제 결혼할지 모르니까 라는 말로 나의 한계를 정하고 대충 하루하루를 보낼 수는 없었다.


바다까지 갈 필요가 정말 없어졌다. 나는 내비게이션의 목적지를 우리 집으로 다시 설정했다. 핸드폰도 잘 되는지 확인했다. 남자는 없어도 그만이었다. 내겐 휴대폰과 내비게이션이 있으니까.


이제 혼자 당당하게 살 계획을 세우면 된다.


집에 도착하니 새벽 1시였다. 나는 집에 들어가지 않고 동네를 뱅뱅 돌며 몇몇 부동산 전화번호를 저장했다.


집에 들어가니 모두 자고 있었다. 나는 밤새 노트북으로 부동산 사이트를 뒤졌다. 몇 시간 후 거실에서 엄마와 아빠가 일어나셨는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거실로 나갔다.


엄마, 아빠가 날 쳐다보았다.


“엄마, 아빠 죄송해요. 걱정하셨지요? 고속도로 타고 바다 가려다가 중간에 돌아왔어요. 가봤자 별거 없을 것 같아서요. 그래도 그 사이에 생각을 좀 했어요. 그래서 할 말이 있어요. 일단 앉아서 이야기 좀 해요.”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니? 언니한테도 그렇게 버릇없이 굴고, 니가 뭘 잘했다고. 어제 몇 시에 들어왔는데?”


“엄마 일단 앉으세요. 제가 할 말이 있어요.”


“니가 할 말이 뭐가 있는데?”


“여보 일단 앉아요. 뭐 할 말이 있다는데 일단 듣고 결정합시다.”


엄마는 아빠의 말에 바로 입을 닫고 앉으셨다.


“그래 말해봐.”


아빠가 말씀하셨다.


“일단, 저 아빠 회사에서 나와서 다른 회사 들어갈래요. 그리고 독립하려고요. 멀리 가진 않을게요. 요 근처에 작은 오피스텔 하나 구해서 나갈래요.”


엄마의 눈이 커졌다.


“너 미쳤니? 왜 나가 살아? 안 돼! 시집이나 가! 그리고 아빠 회사에서 배우면서 일하고 물려받아야지 왜 엄한 남의 회사에 나가? 재가 지금 뭔 소리하는 거야. 여보! 말 좀 해봐요.”


아빠는 코로 숨을 훅 뱉으셨다.


“너 솔직히 일 잘 못해. 그리고 요새 회계사가 많아서 연봉도 낮고. 어딜 가던지 넌 분명 많이 구박받을 거고, 무엇보다 이직이 생각보다 쉽지도 않을 거야. 여기처럼 편하게 돈 벌만한 데는 아무 데도 없어. 그래도 괜찮겠어?”


“알아요. 각오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렇게 제대로 일하면서 사회가 돌아가는 실정을 알아야. 진짜 아빠가 제 도움이 필요할 때 내가 뭐라도 하지요.”


“혼자 살면 정말 하나부터 끝까지 니가 다 해야 하는 데 할 수 있어? 돈은 있고?”


“모아둔 돈에 맞춰서 방 구하면 돼요. 뭐든지 제가 혼자 해볼게요.”


“나갈 땐 마음대로 나가도 들어올 땐 마음대로 못 들어온다.”


“알아요.”


“그럼, 니 맘대로 해.”


“고맙습니다.”


“여보!”


엄마가 소리쳤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방으로 들어갔다. 등 뒤로 아빠가 엄마한테 뭐라고 하시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저 운동 갔다가 출근할게요!’ 소리치고 밖으로 나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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