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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즐거웠어. 춘천 진짜 오랜만인데. 완전 좋더라. 닭갈비도 맛있고, 캠핑장 보니까 여름에 오면 더 좋을 것 같아.”


“그럼 올여름에 또 갈까?”


“시간이 되겠어? 오빠 한창 바쁠 시기잖아.”


“난 화요일에 쉴 수 있으니까. 월요일 저녁에 갔다가 수요일 아침이나, 화요일 밤늦게 오면 돼. 가까운 곳에는 충분히 갈 수 있어. 너는 아무 때나 휴가 낼 수 있잖아.”


“호호 그래요. 여름은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까 천천히 알아보자구요.”


“그래. 그럼 우리 다음 일요일에는 어디 갈까?”


“다음 주 일요일? 지금 일요일 10시야. 뭘 벌써 생각해? 아무리 월요일이 싫어도 그렇지.”


“미리 준비하고 좋잖아.”


“아이고 누가 범생이 아니랄까 봐.”


“극장 갈까? 보고 싶은 거 없어?”


“글쎄 사실은.. 몇 주째 주말마다 외출하니까 사실 좀 피곤해서. 집에서 쉬고 싶어. 밀린 미드나 보면서 그냥 뒹굴거릴까 봐.”


“어! 미드 뭐 보는데?”


“나? 빅뱅이론이라고 범생이들이 주인공인 시트콤이야. 그거 한 시즌이 통째로 밀렸지 뭐야.”


“그래? 나 그거 들어본 것 같아. 안 그래도 보고 싶었는데 잘 됐다. 그럼 우리 다음 주에는 하루 종일 미드 볼까? 우리 집에서 볼래?”


“어? 오빠 집에서?”


“그래. 음식 시켜먹고 한 시즌 통째로 보자.”


“음......”


“맥주랑 피자랑 먹으면서 보면 편할 거야.”


“낮에 누워서 맥주랑 피자 먹으면서 미드를 본다고? 우와 생각도 못했는데 엄청 좋다. 하하하. 콜! 담주에는 낮술 먹으면서 미드 보는 거다. 엄마 때문에 상상도 못했었는데, 엄청 기대된다. 완전 해보고 싶다.”


“그래, 그럼 일요일에 아침 일찍 와.”


“앗싸! 좋아.”


민영이가 화사하게 웃었다,


“오빠, 그럼 나 이제 집에 들어갈게. 얼굴이 탔나 봐. 집에 가서 마사지해야겠어.”


“그래, 들어가.”


민영이가 ‘안녕’ 인사하며 차에서 내렸다. 종종종 뛰어가는 민영이의 뒷모습을 현욱이 가만히 바라보았다. 민영이의 뒷모습이 다 사라지고 나서야 현욱이는 차를 움직였다.


집에 들어서자 현욱은 집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워낙 작은 집이라 한 눈에 모든 것이 들어왔다. 어수선하게 쌓여있는 잡동사니들과 책들, 쓰레기들이 구석구석 던져져 있었다. 현욱은 일단 쓰레기 봉지를 들고 눈에 보이는 잡동사니를 다 집어넣었다. 그리고 옷도 벗지 않고 소파에 앉아 핸드폰으로 청소도구, 자취 인테리어를 검색했다.

한 사이트에 접속하니 팝업창이 떠오르면서 이불 세일을 광고했다. 현욱은 자연스레 광고를 클릭했다. 이불 소개 사진들이 산뜻하니 예뻤다. 결국 현욱은 극세사 침구세트와 2인용 식기 세트와 예쁜 수세미와 화이트 수납장까지 구매하고서야 잠이 들었다.






일요일 아침이었다.


현욱은 새벽부터 일어나 청소를 했다. 마지막에는 냉장고를 열어 먹을 것들을 확인했다. 물, 음료수, 맥주, 소주가 골고루 있었다. 냉동실에는 인스턴트 만두와 핫도그 같은 간식거리가 꽉 채워져 있었다. 냉장고 벽에는 인터넷 후기를 참고해 엄선한 음식 배달 전단지가 붙어있었다. 이번엔 냉장고 문을 닫고 집을 둘러보았다.


바닥에 앉아도 기분 좋은 푹신한 카펫과 수납장에 책을 비롯한 여러 가지 들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연필 한 자루까지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어 깔끔했다. 화장실도 현관도 다 청소해서 반들반들 반짝였다. 고개를 들어 복층의 2층인 침실을 봤다. 새로 산 이불을 입은 침대가 깔끔하게 누워있었다.


현욱은 슬리퍼를 현관 앞에 신기 편하게 고쳐 놓았다. 그리고 하나도 건드리지 않으려고 소파에 가만히 두 다리를 모으고 앉았다.


‘띵동’


현욱은 거울 앞에서 본인의 모습을 슬쩍 훑어보았다. 면바지 위에 셔츠에 브이넥 니트 조끼를 입고 있었다. 현욱은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열었다.


민영이가 꽃과 kfc 치킨을 들고 있었다.


“어서 와. 뭐 이런 걸 사 왔어?”


“그래도 집에 오는데 빈손으로는 못 오지. 근데 꽃병이 있는지 모르겠네.”


민영이가 집안에 들어왔다. 민영이는 슬리퍼를 보지 못하고 양말 신은 발로 바로 거실로 들어왔다. 현욱이는 눈치껏 서둘러 슬리퍼를 벗고, 양말로 민영이 뒤를 쫓았다.


현욱이는 찬장을 열어 제일 먼저 눈에 띈 플라스틱 물병을 꺼내 꽃을 담았다. 그리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결국 꽃병은 싱크대 위에 두었다. 마땅한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현욱은 책상 겸 다용도로 쓰는 테이블을 마루 한가운데로 옮겨 놓고 치킨을 펼쳤다. 냉장고에서 음료수와 미리 준비해둔 과일을 꺼냈다. 민영이는 소파에 앉아 사방을 둘러보았다. 현욱은 너무 조용하고 어색한 것 같아 습관적으로 라디오를 틀었다. 김창완의 조용한 목소리가 나왔다.


“오빠, 라디오 말고 바로 드라마 틀자. 노트북에 담아왔어. 여기 콘센트 어딨어?”


둘은 상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치킨을 먹으며 드라마를 봤다. 중간중간 민영이가 낄낄거렸다. 현욱이는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웃기지는 않았지만 민영이가 웃을 때마다 같이 웃었다.


치킨을 먹고 나니 왠지 자리가 불편했다. 현욱은 이리저리 상을 옮기고 자리를 만들었지만 민영이는 이쪽으로 기댔다가 저쪽으로 기댔다가 계속 불편한 기색이었다. 현욱이는 계속 어떻게 하면 민영이가 편하게 앉을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민영이는 현욱이가 드라마를 안 보고 계속 이렇게 저렇게 자리를 만드는 모습에 일단 드라마를 멈추고 집을 둘러봤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고 위를 가리켰다.


“오빠 우리 저기 침대 위에서 보면 어때?”


현욱이 고개를 들었다. 침대 옆의 작은 창문으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편하긴 하겠지만...”


“그럼 올라가서 침대에 앉아서 보자.”


민영이가 노트북을 들고 2층으로 올라갔다. 현욱이는 ‘먼저 가.’라고 말하고는 계속 먹은 것들을 정리하는 척하면서 꾸물댔다.


“오빠 올라와. 같이 보자.”


“아.. 나는. 이것들 좀 정리하고 먼저 봐.”


“알았어. 먼저 볼게.”


민영이는 침대 옆 미니 탁자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벽에 다리를 뻗고 앉았다. 그리고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현욱은 계속 미적미적 뒷정리를 하고, 화장실도 가고 왔다 갔다 했다.


“오빠 하나 다 끝났어요. 다음 거 넘어가 빨리 와.”


이제 더 버틸 수가 없어서 현욱은 2층으로 음료수를 들고 올라갔다.


현욱이 민영의 옆에 앉았다. 아무 말 않고 드라마를 보다 갑자기 민영이가 하품을 하더니 현욱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현욱은 몸이 뻣뻣해졌다. 순식간에 에피소드가 하나 끝났다. 그리고 다음 편이 시작되었다.


현욱은 침을 꿀꺽 삼켰다. 눈알을 굴려 민영이의 정수리를 봤다.


민영이가 코를 골았다.


현욱은 ‘풋’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멋쩍어서 옆에 있던 음료수를 괜히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민영이를 눕혔다. 현욱이는 노트북을 끄고 침대 옆의 손바닥만 한 창문의 커튼을 쳤다. 그리고 가만히 민영이를 보다 볼에 뽀뽀를 했다. 민영이가 몸을 꿈틀댔다.


현욱은 조심스레 침대에서 내려왔다. 매트리스만 깔린 침대라 높낮이가 별로 차이도 안 났지만 현욱은 굳이 그 옆에 바닥에 앉았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내 웹툰을 보기 시작했다.


“오빠, 왜 추운데 거기에 있어. 여기로 올라와.”


현욱이 “쓰읍”하며 침을 닦으며 고개를 들었다. 침대에서 자던 민영이가 부스스한 눈으로 현욱을 깨우고 있었다. 바닥에서 자던 현욱이는 민영이가 시키는 대로 눈도 제대로 뜨지도 못한 채 침대로 올라갔다.


현욱이 이불속으로 들어오자 민영이가 고양이처럼 현욱의 품으로 들어왔다. 현욱이가 민영이를 꼭 안았다.     


“나 졸려. 더 잘래.”


“응, 나도.”


둘은 꼭 껴안은 채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카톡]


메시지 소리에 현욱과 민영이가 부시럭대며 일어났다. 둘 다 손을 뻗어 핸드폰을 각각 들었다. 민영이에게 온 메시지였다.


알 수 없는 이에게서 온 게임 초대 메시지였다. 민영이는 핸드폰을 끄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현욱이가 눈을 비비며 말했다.


“너무 오래 자면 밤에 못 자는데...”


“그러게... 이제 일어나야지. 미드 더 봐야 하는데....”


“저녁 먹으면서 보자. 저녁엔 뭐 먹을까? 시켜 먹을까 나가서 먹을까?”


“뭐 시켜 먹자. 나가기 귀찮아.”


민영의 말에 현욱이 누운 채로 핸드폰을 들고 배달음식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민영이가 같이 화면을 보다 한집을 가리키며 팔을 뻗었다. 순간 민영이의 가슴이 현욱의 팔에 닿았다.


현욱이 무의식적으로 숨을 크게 마셨다. 민영이의 냄새가 훅 들어왔다.


민영이는 계속 현욱의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현욱이는 참지 못하고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몸을 옆으로 돌려 민영이를 바라보았다. 민영이가 순수한 얼굴로 현욱을 보았다. 그러나 곧 두 볼이 발개졌다. 현욱이가 민영이에게 다가가 키스했다.


현욱이가 민영이를 꼭 안았다. 민영이는 밀착된 몸으로 딱딱해진 현욱의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굉장히 오랜만에 다가온 섹시한 상황이었다. 민영이는 딱히 생각해보지 않았던 상황이었지만 싫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키스에 집중했다.


한참의 키스가 끝나고 현욱이가 민영이를 꼭 안으며 말했다.


“미안해. 이러려고 너 부른 거 아닌데.”


“나도 이러려고 온건 아니야. 그런데 뭐... 싫진 않은데.”


민영이가 조심스레 아쉬움을 보였다.


“아... 난 사실 지금 정신이 안 차려지는데... 그런데 우리 지금은 이러면 안 돼...... 콘돔이 없어.”


현욱이가 주저하며 말했다. 그 말에 민영이가 웃음이 터졌다. 눈치 보며 말하는 현욱이가 스무 살의 첫 키스를 하던 그때의 어린애로 보였다.


“하하하. 그래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그리고 밖에 나가서 저녁 먹자. 나도 너무 늦기 전에 집에 가야지.”


“오늘은?”


현욱이 되물었다. 민영이는 알쏭달쏭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몰라. 아무튼 나가자. 나 화장실 갈래.”


민영이가 일어나면서 이불이 걷어졌다. 그러자 현욱이가 황급히 이불을 덮으며 말했다.


“잠깐만. 난 좀 이따가.....”


“뭐야. 하하하.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애도 아닌데. 그리고 나 이미 예전에 그거 다 봤었거든. 큭큭큭.”


민영이가 농을 던지고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저녁을 먹고, 커피도 한 잔 하고, 천천히 둘은 민영이네 집으로 갔다.


“다음 주에는 애버랜드에 갈까? 요즘 재밌다던데.”


“나쁘진 않은데. 난 외출 별로 안 좋아해. 피곤해.”


“그래 그럼 멀리 가지 말자. 근데 화요일에는 퇴근하고 바빠?”


“화요일? 음... 난 주중에는 운동하는 거 외에는 딱히 별일 없어. 근데 피곤해서 집에 가서 쉬어야 해. 그래야 다음 날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거든. 나는 주중에는 외출하는 거 별루...... 좀 그래.”


“그래... 알았어.”


현욱이 좀 시무룩하게 말했다.


민영이가 차에서 내리려다가, 한쪽 팔을 뻗어서 현욱의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현욱에게 키스했다. 현욱이도 민영이를 안으며 격렬하게 민영이의 입을 빨았다. 그렇지만 금세 민영이가 현욱에게서 떨어졌다.


현욱이가 입을 벌린 채 숨을 헐떡이며 민영이를 바라보았다.


“나 갈게요.”


민영이가 현욱의 볼에 키스하더니 씽긋 웃고는 차에서 내렸다.


현욱은 어버버 하며 그대로 얼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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