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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아, 이번 주 일요일에 우리 피크닉 갈까?]


카톡! 소리에 민영이는 얼른 핸드폰을 집었다. 카톡 미리보기로 메시지의 내용을 볼 수 있었다. 현욱이었다.


지난 일요일 결혼식 이후, 첫 연락이었다. 순간의 자연스러움에 취해 연락처를 주고받았을  때, 내심 바로 다음 날이면 연락이 올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수요일인 오늘에서야 연락이 온 것이다.


민영이는 카톡을 확인 한 순간 왠지 좀 짜증 났다. 그리고 짜증 나는 자신이 좀 창피했다. 민영은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고 핸드폰 화면을 껐다.


그런 민영이를 김부장님과 이회계사님 그리고 승민씨가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은 점심시간이었다. 김부장님이 밥보다 먼저 나온 밑반찬을 집어 먹으며 말했다.


“남자지? 그치?”


“아니에요.”


민영이가 고개를 저으며 컵에 물을 따랐다.


“에이, 남자 맞는 거 같은데.”


김부장님이 뻔뻔한 아줌마처럼 능글맞게 또 말하자, 이회계사님이 팔을 툭 치면서 눈치를 주었다. 그래도 김부장님은 굴하지 않았다.


“지난주에 부케 받았잖아. 혹시 소개팅 한 거 아니에요? 보통 부케 받으면 소개팅하고 뭐 그러잖아.”


“아니에요. 진짜. 그냥 친구예요. 날씨 좋다고 문자 온 거예요.”


“쩝, 아님 말고.”


김부장님은 김샜다는 표정으로 괜히 입맛을 쩝쩝 다셨다.


“날씨 정말 좋다. 이 화창한 봄도 다 지나가고 있는데 어쩜 우리들은 하나같이 다 싱글이지? 억울하당. 우리 밥 빨리 먹고 커피 한잔 들고 좀 걸을까? 우리도 광합성 좀 해야지.”


김부장님이 말했다.


“점심시간이 얼마나 된다구요. 밥 먹고 나면 그럴 시간이 있겠어요?”


승민씨가 샐쭉거리며 말했다.


“휴...... 이회계사님도, 승민씨도, 민영 회계사님도 모두 이번 봄에 소풍 한 번 가봤어요? 모두 주말에도 집에만 있었다면서요. 안 되겠어!

우리 내일 점심시간에 샌드위치라도 들고 회사 옥상 테라스에서 세미 소풍 하자. 어때? 버려진 내 20대 마냥 유유자적하다가 이 봄을 그냥 놓칠 수는 없어. 이제 더 늙기 전에 이 순간을 즐겨야 한다고. 내일 점심 소풍 어때?”

김부장님이 소녀처럼 말했다. 이회계사님도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래요. 나도 모처럼 애 없는 소풍 한 번 해봅시다. 그런데 샌드위치가 배달이 되나? 사러가야 하나?”


승민씨가 ‘검색해볼게요.’라고 말해며 핸드폰을 들었다. 셋은 머리를 맞대고 내일의 점심 샌드위치를 사 오자는 등, 과일을 가져오겠다는 둥 나름의 소풍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민영이는 입을 다물었다. 정말 이번 봄에는 소풍을 한 번도 못 갔다.


민영이는 자기도 샌드위치 배달을 검색을 하는 척 핸드폰을 들었다. 그리고  현욱에게 답을 보냈다.


[소풍 좋아요. 내가 샌드위치 준비할게.]






일요일 2시, 민영이의 현관에는 잘 포장된 베이커리의 샌드위치가 놓여 있었다. 민영이는 옷을 다 갖춰 입고는 잘 세팅된 헤어가 눌러지지 않게 허리를 세우고 소파에 앉아 무한도전 재방송을 보고 있었다.


카톡!


[아파트 단지 앞이야. 횡단보도 앞, 내가 옛날에 기다리던 거기에 차 세우고 있어. 나와]


민영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같이 텔레비전을 보던 엄마가 물어보셨다.


“너 데이트하러 가는 거니?”


“아니야. 친구들이랑 피크닉 가기로 한 거야.”


“근데 뭐 그렇게 꾸미고 나가.”


“사진 찍을 거니까.”


엄마는 민영이의 대답을 하나도 안 믿는 표정이었지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민영이는 서둘러 집을 나왔다.


현욱이가 흰색 소나타 안에서 창문을 내리고 손을 흔들었다. 민영이는 서둘러 차에 탔다.


“뭘 그리 서둘러. 누가 볼까 봐?”


“아니... 뭐.”


“너 결혼했냐?”


“어? 무슨 말이야?"


“너 지금 나랑 불륜이냐고. 누가 보는지 왜 그리 신경 써? 고등학생들도 요즘엔 숨어서 연애 안 한다. 뭐가 겁나서 그래.”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이 동네서 벌써 20년을 살았어. 동네 사람들 말이 많아서 귀찮아서 그래. 미안해.”


“허허허, 뭘 또 변명까지.”


현욱이가 능글맞게 웃으면서 차를 움직였다. 순간의 침묵 사이에 잔잔한 음악이 흘렀다. 조용한 재즈였다.


“재즈?”
 

“응, 그냥 왠지 차를 타면 음악을 켜야 할 것 같아서. 학생이 차 샀다고 하니까 선물해준 노래야.”


“어! 그러고 보니 이거 새 찬가 본데?”


“그래, 내 애마에 탄 첫 여자가 바로 너야. 참 예쁘지.”


민영이가 예쁘다는 건지, 차가 예쁘다는 건지 애매하게 말해놓고 현욱은 쿡! 웃었다.


“두 달 전에 샀어. 재수반 수업하니까 새벽에 움직일 때마다 택시 타는 게 불편하고 비싸서 차를 하나 샀지. 근데 이거 중고 차야. 학부모 중에 중고차 딜러 하시는 분이 새 차 뽑자마자 중고시장에 나온 것을 알선해줬지.”


“새 차를 뽑자마자 중고로 내놓는다고? 그게 무슨 경우야?”


“뭐, 일종의 카드깡을 하는 거래. 현금이 필요한 사람들이 카드로 차를 사놓고 바로 중고로 내놓는 거라는데 나도 잘 모르겠어. 아무튼 뽑은 지 한 달도 안 되는 걸 꽤나 싸게 구입했지.”


“오.. 뭔 말인지 모르겠어. 하하하. 암튼 새 차라 좋다.”


“니 외제차보다 좋겠냐.”


“에이, 나야 언니가 몰던 낡은 건데 뭐. 벌써 7년 된 고물이야. 바꾸고 싶어. 근데 중고차도 할부가 되는 거야?”

둘은 카드 할부에 대해서, 보험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며 금세 서울숲 공원에 도착했다.


일요일 오후의 공원에는 사람들이 붐비지 않았다. 민영이는 피크닉 가방을 들고 내렸고, 현욱이가 트렁크에서 작은 아이스박스를 꺼냈다.


“무겁게 아이스박스까지 뭣하러 들고 왔어?”


“시원한 맥주 먹이려고.”


“맥주?”


“네가 맥주 없음 서운해할까 봐. 여기서 팔지 안 팔지 몰라서 어제 밤에 사다 놨어.”


“하하하. 잘 했어. 오빠 기억력 좋은데. 나도 질 수 없지. 오빠 샌드위치에는 오이는 뺐어.”


민영이가 웃으며 말했다.


“아이고 고마워라.”


현욱도 웃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민영이는 맥주부터 마셨다. 잠시 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민영이는 괜히 지은이네 이야기를 꺼냈다.


“지은이 어제 신혼여행 마치고 한국 왔데.”


“그래. 창수도 어제 도착했다고 하더라. 지은이는 좋았데?”


"지은이 말로는 그동안 여행을 많이 다녀서 특별한 것도 없고, 임신 때문에 몸이 힘들고, 애기 잘못될까 예민해져서 짜증이 많이 났데. 나 보고는 절대 자기처럼 애기 갖고 결혼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던데. 하하하."


“그래? 창수는 마냥 좋았데. 바다도 좋았고, 지은이도 엄청 행복해했다면서 빨리 결혼하라고 자랑하던데?”


둘은 쿡쿡 웃었다.


“지은이가 조만간 만나자고. 선물 사놨데.”


“창수도 그러더라. 우리 그냥 다 같이 만날까? 넷이. 옛날처럼.”


“뭐... 안될 건 없지만... 글쎄......”


민영이가 고개를 돌리며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야야. 천천히 마셔. 낮술은 빨리 취한다고.”


“에이 이게 뭐가 낮술이야. 2시 넘으면, 낮술 아니야.”


“내일 출근도 해야 하잖아.”


“뭐, 그건 그렇지.”


그때 근처에서 뒤뚱뒤뚱 걸음을 떼던 아기가 어설프게 달리기를 하다가 둘의 돗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이쿠 죄송합니다.”


아이의 아빠가 뛰어왔다. 아이 아빠는 민영이가 들고 있는 맥주캔을 보고는 잽싸게 아이를 덥석 안고 갔다. 민영이가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해는 좋은데, 맥주 맛은 안 난다. 사람이 너무 많아. 나는 너무 주변을 의식하나 봐.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 같아.”


“여전하구나. 사람들 싫어하고 구석에 있으려고 하는 거.”


“그러엄. 사람이 변하냐? 당연히 여전하지.”


“그럼 딴 데 가서 맥주 더 마실래? 어차피 뭣 좀 더 먹어야 할 것 같아. 나도 샌드위치로는 배가 안찬다.”


“그럴까?”


“음... 일단 우리 집에 가서 차를 세우고 가자. 나도 술 좀 마시지 머.”


“오빠 집이 어딘데?”


“양재. 10분 거리야.”


현욱은 커다란 오피스텔 건물의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나 잠깐 집에 가서 잠바 좀 가져올게. 여기 있어.”


맥주 한 캔에 볼이 조금 발개진 민영이가 말했다.


“나 쉬 마려워.”


현관문을 열자 센서등이 켜졌다. 민영은 서둘러 화장실로 들어갔다. 변기에 앉자마자 소변이 나왔다. 밖에 소변보는 소리가 들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영이는 변기에 앉은 채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화장실이 엄청 좁에서 세면대에 손을 뻗어 물을 틀 수 있었다. 세면대에 물 내리는 소리로 소변 소리를 감추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민영이는 천천히 화장실을 다시 둘러보았다.


작은 변기와 샤워기가 달린 작은 세면대가 좁은 화장실에 꽉 차 있었다. 벽에는 뽁뽁이로 칫솔, 치약, 비누를 붙여놓 붙어있었고, 바닥에 샴푸 하나가 덜렁 내려져있었다. 주변에 자취하는 친구가 없어서 이렇게 작은 집을 처음 보는 민영이는 오밀조밀한 화장실을 신기하게 생각하며 둘러봤다.


민영이가 손을 씻고 나오자 잠바를 입고 서성대며 기다리던 현욱이 차키를 들며 말했다.


“나가자. 뭐 먹을까?”


“글쎄, 우리 그냥 여기서 뭐 시켜 먹을까?”


당황한 현욱이 오피스텔을 둘러보았다. 10평, 실평수로는 7평 정도인 작은 복층 오피스텔이었다. 좁은 원룸에는 빌트인으로 된 주방을 제외하고는 미니 소파와 작은 텔레비전, 책뿐이었다. 그나마도 제대로 정리가 안돼서 어수선했다.


“여기서? 답답하지 않아?”


“난 괜찮아.”


민영이가 미니 소파에 앉았다. 현욱이 왼손으로 얼굴을 쓸며 미간을 찌푸렸다. 괜히 미니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물도 작은 거 한 병 밖에 없어. 나가자.”


“치킨 시키자. 사실 술이 좀 오르는 거 같아서. 간만에 낮술이라 그런가 봐. 밖에 나가기 귀찮아. 사실 좀 피곤하기도 하고.”


민영이가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티셔츠가 올라가며 배꼽이 살짝 보였다.


“그... 그럼 치킨 시키자.”


현욱이 차 키를 잡은 손으로 핸드폰을 켰다.


“여기 앉아.”


민영이가 미니 소파 한쪽으로 쏠려 앉으면서 빈자리를 툭툭 쳤다. 현욱이 아랫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현욱이 소파에 앉았다. 작은 1~2인용 소파라 둘의 허벅지가 닿았다. 민영이가 치킨집을 검색하는 현욱의 핸드폰 화면을 보려고 몸을 쭉 내밀었다. 민영의 가슴이 현욱의 팔에 닿았다. 현욱이 ‘흠’하는 소리를 냈다. 

민영이가 한쪽 머리를 귀에 꽂으며 말했다.


“오빠, 이 집 괜찮네.”


순간 민영의 정수리에서 향긋한 냄새가 확 풍겼다.


현욱이 벌떡 일어났다.


“나가자. 나가서 이야기 하자.”


민영이가 의아한 눈으로 ‘왜?’라고 물었지만, 바로 신발을 신는 현욱을 보고는 더 이상 고집부리지는 않았다.


부대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현욱이 민영이에게 소주를 따라주었다. 민영이가 한 모금 맛있게 마셨다.

    

“진짜 맛있게 마신다. 소주 모델해도 되겠어. 널 보면 나도 술이 마시고 싶어 진다니까. 음료수처럼 맛있게 마시니까. 근데 막상 마시면 난 술이 맛없어.”


현욱이 물을 마시며 말했다.


“맥주는 맛있다고 하지 않았어?”


“그거야 너 꼬시려고 한 말이지. 난 콜라가 더 맛있어.”


민영이가 피식 웃었다. 현욱이는 찌개를 접시에 덜어 민영이에게 주었다. 민영이가 찌개를 한 모금 먹고 ‘캬~ 맛있다.’ 하고는 또 소주를 반 잔 마시고 ‘캬~ 맛있다.’ 했다.


“어이구, 다 맛있어서 어쩌냐. 많이 먹어라.”


현욱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동안 만난 여자들 중에 나처럼 맛있게 먹는 애들은 없었지?”


민영이가 물었다. 현욱이는 자기 그릇에 부대찌개를 덜고, 한 모금 먹으면서 말했다.


“그럼. 너처럼 술 마시는 마시는 애는 한 번도 못 만났지.”


“그래? 흥!”


민영이는 괜히 입을 삐죽거렸다. 왜 삐쭉댔는지 본인도 몰랐다.


“다른 여자들은 살찐다고 잘 먹지도, 잘 마시지도 않더라. 그래서 그런지 오래 만난 사람이 별로 없었어.”


“뭐야. 날씬하면 좋은 거 아니야? 취향이 먹방 찍는 여자야? 독특하네.”


“그런가 봐.”


민영이는 입술을 오므리며 아래를 보았다. 순간 입꼬리가 올라가며 웃을 뻔한 것을 숨기기 위해서였다.


“너는? 같이 술 마셔주는 남자 만났어?”


“그럼. 다들 같이 마셔주겠다고 난리였지. 큭.”


민영이가 쿡 웃었다. 현욱의 얼굴에 순간 씁쓸함이 지나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같이 마시다가 지가 취하기도 하고, 주사 있는 사람들도 있고, 너무 짜증 나더라. 술은 나만 마시면 됐지 남자까지 마실 필요는 없더라구.”


찌개를 뒤적이던 현욱이가 씩 웃었다. 민영이도 미소 지었다. 현욱이 말했다.


“소주 더 시킬까? 맥주 시킬까?”


“소맥 먹자 소맥.”


민영이가 웃으며 말했다. 현욱이 소주 한 병과 맥주 한 병을 시켜줬다. 민영이가 취향에 맞게 소주와 맥주를 섞었다. 현욱은 맥주를 따랐다. 둘이 건배를 했다.


“오빠 덕분에 오늘 소풍도 가보고 고마워.”


“그러게, 나도 몇 년 만에 소풍이었어. 좋더라. 다음엔 어디 갈까? 좀 멀리 갈까?”


“좋지. 아침 일찍 출발해서 제부도나 강화도 같은데 가자. 가깝고 좋다던데.”


“그래, 그러자. 난 일요일은 항상 시간 되니까. 다음 주에 갈까?”


“다음 주? 근데 다음 주에는 완전 소풍철이라 사람 너무 많고 길도 막히지 않을까? 가고는 싶은데 사람이 많은 건 싫어.”


“그래, 그럼 난 화요일도 한 달에 2번은 쉴 수 있어. 언제 휴가 내서 평일에 가자.”


“좋아. 날 잡고 바다 보면서 소주 한잔 하자. 좋겠다.”


“맞다. 나 집에 좋은 술 있는데.”


“무슨 술?”


“작년에 서울대 합격한 애가 고맙다고 양주를 선물했어. 그냥 모셔두고 있었는데. 다음에 너 줄게.”


“그래? 완전 좋지. 헤헤헤 좋다.”


민영이가 소맥을 쭉 들이키더니, 등 뒤의 벽에 몸을 기댔다. 술이 올라 눈을 살짝 감고는 민영이가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오빠. 지금 참 좋다. 예전에는 헤어진 연인이랑 친구가 어떻게 되냐고 생각했었는데, 친구될 수 있을 것 같아. 함께한 추억도 많고, 서로도 잘 알고. 사실 그 시절 오빠가 내 베스트 프랜드였잖아. 맨날 둘이서만 붙어 다녔으니까. 그래서 그런지 이렇게 다시 만나도 편하고 참 좋다. 연락해줘서 고마워.”


현욱은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새도로 반짝이는 눈두덩이와 깊은 속눈썹. 발그레한 볼과 입술, v자로 파진 니트 스웨터 사이로 수백 번이나 얼굴을 부볐던 가슴골이 아주 조금 보였다.

 

현욱이는 맥주잔을 내려놓고, 빈 잔에 물을 따랐다.


민영이가 눈을 떴다.


“어휴, 몇 시야? 9시? 이제 집에 가야겠다. 일어나자. 내일 출근해야지.”


민영이의 말에 현욱이는 영수증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영이가 손을 흔들고는 뒤를 돌아 아파트로 들어갔다. 현욱은 민영이가 보이지 않자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한 모금 마시고 담배를 마셨다. 그러나 곧 다 피지 못한 담배 불을 끄고, 꽁초는 휴대용 재떨이를 꺼내서 버렸다.

현욱은 아파트 벤치에 앉았다. 가로등이 켜져 있었지만 밤하늘에 점점이 별이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현욱은 누군가 도시의 밤하늘에 보이는 것은 별이 아니라 인공위성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났다. 하지만 현욱은 그냥 그 반짝임을 별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시계를 보니 민영이가 들어간지 30분이 지나있었다. 현욱이는 민영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응, 잘 들어갔지?”


“그럼. 오빠는 집에 잘 들어갔어?”


“어... 집 앞에 편의점이야 맥주 한 캔 사서 갈까 하고.”


“술이 늘었네. 쿡.”


“그러게 너 만나서 그런가 보다.”


순간의 침묵이 느껴졌다. 현욱이 서둘러 말했다.


“민영아, 다음 주에 영화 볼까? 내가 일요일만 쉬니까 영화 보려면 미리 예매해놔야 하거든. 사실 같이 영화 볼 사람 없어서 그동안 극장도 못 갔다니까.”


“호호호. 무슨 영화인데?


“해피 로맨스.”


“오빠 취향이 로맨틱이었어? 난 왜 몰랐지? 사실은 주말에 혼자 조조 영화 보려고 생각하고 있긴 했어. 난 원래 혼자 극장 자주 가거든. 근데 스릴러 보려고 했는데.”


현욱은 전화기를 더욱 귀에 바짝 댔다. 민영이의 목소리를 더 크게 듣고 싶었다.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현욱이 말했다.


“그래? 그것도 좋아. 난 취향 없어. 극장 구경만 해도 좋아. 그럼 일요일 아침에 일찍 보자. 내가 예매할게. 조조로 예매한다.”


“가까운 극장으로 예매해요. 다음 주 일욜에 봐요.”


“그래.”


“잘 자요. 난 내일 출근 때문에 이제 자야 해.”


“아.. 넌 일찍 출근하지. 난 늦게 출근하니까.”


“그래? 몇 시에 출근하는데?”


대화는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한 참 지나 결국 민영이가 하품을 연달아 3번이나 하고서야 겨우 굿나잇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현욱은 통화 종료가 되자마자 바로 핸드폰으로 영화를 예매했다. 그리고 사이버 티켓을 카톡으로 민영이에게 전송한 후에야 현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벤치에서 일어나며 현욱은 습관적으로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현욱은 손 안의 담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예전의 민영이가 코를 막으며, 담배가 싫다고 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현욱은 담뱃갑을 통째로 쓰레기통에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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